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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리포트 · 전쟁분석 리포트 · 러시아 레닌그라드 포위 1941~1944 · 11분 읽기 · 2026.10.05

레닌그라드 포위 872일, 빵 배급 125그램의 겨울을 도시는 어떻게 넘겼나

1941년 9월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로 통하는 육로를 끊자 250만 명 넘는 시민이 872일 동안 바깥 공급이 거의 끊긴 채 살았고, 첫 겨울에는 빵 배급이 하루 125그램까지 줄고 난방과 수도, 전기가 함께 멈췄습니다. 배급량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얼어붙은 라도가 호수 위 '생명의 길'이 무엇을 날랐는지, 사람들이 무엇으로 버텼는지를 기록으로 짚고 오늘 한국 아파트의 장기 단절에 옮겨 봅니다.

연출 이미지

사건 개요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고, 9월 8일 독일군이 라도가 호수 남쪽 기슭까지 밀고 들어오면서 레닌그라드로 통하는 육로가 모두 끊겼습니다. 북쪽에서는 핀란드군이 내려왔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 포위가 1941년 9월 8일부터 1944년 1월 27일까지, 실제로는 872일 이어졌다고 정리합니다.

포위가 시작될 무렵 도시가 가진 식량은 많지 않았습니다. 1941년 9월 12일 집계로 곡물과 밀가루, 마른 빵은 35일분, 곡물류와 마카로니는 30일분, 고기는 33일분, 기름은 45일분, 설탕은 60일분이었습니다. 그 재고를 안고 250만 명 넘는 시민이 겨울을 맞았습니다.

이 리포트는 전투가 아니라 도시 안의 생활을 봅니다. 배급량이 어떻게 줄고 늘었는지, 첫 겨울에 무엇이 함께 끊겼는지, 얼음 위로 낸 길이 무엇을 날랐는지,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버텼는지입니다. 포위된 도시는 배급과 바깥 공급, 이웃이 함께 움직이는 방식으로 버텼습니다.

시간대별로 본 경과: 포위부터 해제까지

빵 배급은 포위 직전인 9월 2일부터 줄기 시작해 1941년 9월 8일 육로가 끊긴 뒤 10월과 11월까지 모두 다섯 번 줄었습니다. 마지막 감축이 11월 20일이었고, 이때부터 노동자는 하루 250그램, 사무원과 부양가족, 12세 미만 아이는 125그램을 받았습니다.

같은 무렵 라도가 호수가 얼었습니다. 11월 20일 말썰매 행렬이 동쪽 기슭으로 떠났고, 11월 22일에는 화물차가 처음으로 얼음 위를 달렸습니다. 이 길로 들어온 식량이 쌓이면서 12월 25일 처음으로 배급이 늘었습니다.

1942년 1월 22일부터는 얼음길로 시민을 대규모로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1월 24일과 2월 11일에 배급이 다시 늘었고, 4월 15일에는 겨울 내내 멈췄던 전차가 다시 다녔습니다. 첫 겨울의 얼음길은 4월 하순까지 152일 동안 쓰였습니다.

1942년 봄에는 시민들이 거리와 마당을 치우고 빈 땅에 채소를 심었습니다. 1943년 1월 18일 소련군이 호수 남쪽 기슭에 좁은 육로 통로를 열었고, 1944년 1월 27일 포위가 완전히 풀렸습니다.

빵 배급량은 어떻게 바뀌었나

레닌그라드에는 포위 전인 1941년 7월 중순부터 배급표가 있었습니다. 포위가 길어지자 시는 재고가 바닥나지 않도록 배급량을 계속 줄였고, 얼음길로 식량이 들어오자 다시 늘렸습니다. 아래는 하루 빵 배급량입니다.

가장 적었던 125그램은 1941년 11월 20일부터 12월 25일까지 한 달 남짓 이어졌습니다. 당시 빵은 밀가루가 60%에도 못 미쳤고, 나머지는 기름 짜고 남은 깻묵, 겨, 식용 셀룰로스 같은 것을 섞어 구웠습니다.

이 무렵에는 빵 말고 다른 식품은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레닌그라드 승리 기념 자료와 러시아 통신사 RIA 노보스티가 전한 국립 레닌그라드 방어·포위 기념관 설명으로는 1941년 12월 한 달에만 약 5만 명이 숨졌습니다.

12월 25일 처음 늘어난 양은 노동자 100그램, 그 밖의 시민 75그램이었습니다. 이후 1942년 1월과 2월에 두 번 더 늘었습니다. 배급량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길이 열리고 닫히는 데 따라 움직였습니다.

  • 1941년 9월 2일: 노동자 600g, 사무원 400g, 부양가족·아이 300g
  • 1941년 10월 1일: 노동자 400g, 그 밖의 시민 200g
  • 1941년 11월 20일: 노동자 250g, 사무원·부양가족·12세 미만 아이 125g (가장 적은 배급)
  • 1941년 12월 25일: 노동자 350g, 그 밖의 시민 200g
  • 1942년 1월 24일: 노동자 400g, 사무원 300g, 부양가족·아이 250g
  • 1942년 2월 11일: 노동자 500g, 사무원 400g, 부양가족·아이 300g

첫 겨울: 난방과 물, 전기가 함께 끊겼다

1941~1942년 겨울은 유난히 일찍 와서 길게 이어졌습니다. 연료가 바닥나자 발전량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러시아 국립 해군박물관의 '생명의 길' 전시 설명은 이 겨울에 집집의 중앙난방이 멈추고, 수도와 하수가 얼고, 전차 같은 전기 대중교통이 멈췄다고 정리합니다.

러시아 소비자보호·위생감독청 자료도 같은 겨울 상수도와 하수도가 무너지고 전기 공급이 끊겼다고 적었습니다.

집 안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게 된 것은 건물 안 배관이 얼어 터졌기 때문입니다. 시의 상수도 자체는 포위 기간 내내 일부가 돌아갔고, 시는 길거리와 마당에 공용 급수전을 열었습니다. 많은 시민이 양동이와 주전자를 들고 급수전 앞에 줄을 서거나, 얼어붙은 네바강에 얼음 구멍을 뚫고 물을 길었습니다.

난방은 대부분 '부르주이카'라고 부른 작은 철제 난로가 맡았습니다. 가족이 그 난로 하나 곁에 모여 물을 데우고 음식을 끓였습니다. 시는 임시 난로 만드는 법을 소책자로 알렸지만, 손에 닿는 것을 태우다 보니 불이 나는 일도 잦았습니다.

라도가 호수 '생명의 길'

레닌그라드 동쪽의 라도가 호수는 소련군이 지키던 기슭과 이어져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배로, 겨울에는 언 호수 위로 물자를 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 길을 사람들은 '생명의 길'이라고 불렀습니다.

러시아 국립 해군박물관 기록으로는 1941년 11월 19일 호수 얼음길을 여는 명령이 나왔고, 다음 날 말썰매 행렬이 먹을 것을 실으러 동쪽 기슭으로 떠났습니다. 11월 22일에는 화물차가 얼음 위로 나섰습니다. 얼음이 얇은 초기에는 차가 빠지는 일이 잦았고, 독일군의 폭격과 포격도 이어졌습니다. 얼음 위에는 대공포가, 하늘에는 전투기가 배치돼 길을 지켰습니다.

첫 겨울 얼음길은 152일 동안 쓰였고, 그동안 시민 50만 명 넘게 도시를 빠져나갔습니다. 집계에 따라 51만~55만 명으로 조금씩 다릅니다. 레닌그라드 승리 기념 자료는 포위 기간 전체에 걸쳐 약 130만 명이 도시 밖으로 대피했다고 집계합니다. 1942년에는 호수 바닥으로 연료 관로가 놓였고, 두 번째 겨울에도 얼음길이 다시 열렸습니다.

바깥과 이어진 길 하나가 배급량과 대피 인원을 함께 정했습니다.

사람들이 버틴 방법

비타민을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채소가 거의 없던 첫 겨울, 레닌그라드 비타민공업 연구소 과학자들은 가문비나무 같은 침엽수 잎을 식초나 구연산을 탄 물에 우려 비타민 C 음료를 만드는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하루 100~200그램이면 필요한 비타민 C를 채울 수 있다는 계산이었습니다.

병원과 공장, 학교에 우리는 설비가 차려졌고, 집에서 만드는 법은 소책자와 라디오로 알렸습니다.

소식은 라디오로 들었습니다. 포위 첫 몇 달 동안 거리에 확성기 1,500개가 설치됐습니다. 시민들은 이 방송으로 공습 경보를 듣고 전황과 생활 안내를 들었습니다.

봄이 오자 도시를 함께 치웠습니다. 겨울 내내 하수가 얼어 있던 도시에는 눈이 녹으면 전염병이 돌 위험이 컸습니다. 1942년 봄 많은 시민이 나서 마당과 거리, 공동주택, 집 안을 치웠습니다. 시는 깨끗한 마실 물이 나오는 수도를 따로 열었고 공중목욕탕을 다시 열었습니다.

국립 레닌그라드 방어·포위 기념관 학술 담당자는 그해 봄 전염병이 크게 번지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빈 땅에 채소를 심었습니다. 1942년 봄부터 시민들은 시내 곳곳의 빈 땅에 채소를 심었고, 이듬해 봄에도 텃밭을 이어 가며 배급의 부족을 덜었습니다.

식량은 배급표로 들어왔습니다. 포위 초기 식당과 상점의 남은 물자가 금세 바닥나자 배급표가 식량을 얻는 거의 유일한 길이 됐습니다. 빵은 배급표에 적힌 양만큼만 나왔고, 노동자와 사무원, 부양가족, 아이라는 분류에 따라 양이 달랐습니다.

사망자는 몇 명이었나: 기관과 연구자마다 다른 숫자

레닌그라드 포위의 사망자 수는 전쟁 중 기록이 온전하지 않아 집계마다 크게 다릅니다. 숫자 하나로 정리하지 않고 누가 셌는지 함께 적습니다. 역사가들의 추정은 대체로 소련 정부 집계보다 높습니다.

포위 중 숨진 사람의 대부분은 폭격이나 포격이 아니라 굶주림과 추위, 병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숨진 때는 1941년 12월부터 1942년 2월 사이였습니다. 식량과 온기가 모자란 첫 겨울에 가장 많은 사람을 잃었습니다.

  • 소련 정부(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제출): 632,253명
  • 프랑스 유럽사 디지털 백과(EHNE): 약 80만 명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942년 한 해에만 약 65만 명

오늘 우리 아파트에 옮기면

한국의 대도시가 레닌그라드처럼 2년 넘게 포위된다고 전제하지는 않습니다. 이 기록에서 가져올 것은 외부 공급이 길게 끊겼을 때 무엇이 먼저 무너지고, 무엇이 사람을 버티게 했는가입니다.

먼저 식량입니다. 레닌그라드의 재고는 곡물 기준 35일분이었고, 배급량은 바깥 길이 열려야 늘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비상사태 초기를 버틸 가정 비상물자를 30일분 기준으로 안내하고, 비상사태가 나면 정부가 중요 생필품의 수급을 관리하고 필요하면 배급제를 실시한다고 밝힙니다.

배급제가 시행되면 돈이 있어도 살 수 있는 양이 정해지고, 지자체가 공지한 절차를 따라야 물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 집에서 실제로 먹는 것을 나누어 사 두고 돌려 쓰는 30일분 비축과, 주민등록 주소와 세대원 명단이 실제와 맞는지 확인해 두는 일이 함께 갑니다.

다음은 난방과 물입니다. 서울의 고층 아파트는 난방과 급수, 승강기가 모두 전기에 걸려 있습니다. 2023년 말 전국 378만 세대, 주택의 약 19%가 지역난방을 씁니다. 레닌그라드 사람들이 난로 하나 곁에 모였듯, 전기 없는 겨울에는 집 전체가 아니라 외벽과 창이 적은 방 하나를 골라 그 방만 지키는 것이 기본입니다.

다만 레닌그라드에서 잦았던 화재를 떠올리면, 틈을 막은 방에서 버너나 난로를 켜지 않고 일산화탄소 경보기 없이 연소 기기를 쓰지 않는 원칙이 함께 따라와야 합니다.

급수가 전기에 걸린 아파트는 정전이 길어지면 물도 끊길 수 있습니다. 공급이 있을 때 담을 수 있는 용기를 모두 채우되, 마실 물은 식품용으로 쓰던 깨끗한 용기에만 받습니다. 동네 민방위 비상급수시설과 단지 비상발전기가 무엇을 돌리는지도 미리 알아 둡니다.

마지막은 이웃입니다. 레닌그라드의 봄 청소와 텃밭은 많은 시민이 함께 움직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장기 단절에 대비한 세 번째 단계는 건물 단위의 운영입니다. 누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물과 배급을 누가 언제 받아 오는지, 혼자 나갈 수 없는 세대가 어디인지를 미리 이야기해 둡니다.

개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1. 집에서 실제로 먹는 식량과 물을 30일분 기준으로 나누어 사 두고, 먼저 산 것부터 먹으며 돌려 씁니다. 레닌그라드의 곡물 재고는 35일분이었습니다.
  2. 배급제가 시행되면 지자체가 공지한 절차를 따라야 물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민등록 주소가 실제 사는 곳과 같은지, 세대원 명단이 맞는지 평소에 확인해 둡니다.
  3. 겨울에 전기와 난방이 끊기면 외벽과 창이 가장 적은 방 하나에 가족이 모입니다. 창에는 담요를 걸고 바닥에는 러그를 깔고, 찬 바람이 드는 틈만 막습니다.
  4. 틈을 막은 방에서는 버너와 양초, 난로를 켜지 않습니다. 일산화탄소 경보기 없이 연소 기기를 쓰지 않습니다.
  5. 물이 나올 때 담을 수 있는 용기를 모두 채우되, 마실 물은 식품용으로 쓰던 깨끗한 용기에만 받습니다. 급수가 전기에 걸린 아파트는 정전이 길어지면 물도 끊길 수 있습니다.
  6. 같은 층이나 단지 이웃과 누가 무엇(물 용기, 발전기, 공구)을 갖고 있는지, 혼자 나갈 수 없는 세대가 어디인지 한 번 이야기해 둡니다. 30일분 비축이 절반으로 줄었는데 급수와 배급이 재개되지 않으면 그날 머물지 떠날지를 다시 판단합니다.

출처

  • Encyclopaedia Britannica, 「Siege of Leningrad」 (britannica.com)
  • 러시아 국립 해군박물관 분관 '생명의 길', 「Ленинград в блокаде. Зима 1941-1942 годов」·「The creation and function of the ice route. The winter of 1941-1942」 (navalmuseum.ru)
  • 상트페테르부르크 기록보관위원회, 「블로카다 80개의 사실」 18번 (spbarchives.ru)
  • 레닌그라드 승리 기념 사업, 「Блокада языком цифр」, 2018 (leningradpobeda.ru)
  • 「Блокада. Ленинград. Водоканал」, 『Водоснабжение и санитарная техника』 2010년 5호
  • RIA 노보스티, 「С 20 ноября 1941 года жители блокадного Ленинграда по продуктовой карточке стали получать 125 граммов хлеба」, 2001 (국립 레닌그라드 방어·포위 기념관 학술부 설명)
  • 러시아 의회신문(Парламентская газета), 「Хлеб стойкости: как ленинградские пекари приближали День Победы」, 2026
  • 러시아 소비자보호·위생감독청 위생교육센터, 「Эпидемическая ситуация в блокадном Ленинграде и борьба с инфекциями」
  • Петербургский дневник, 「Блокадный Ленинград сам защитил себя от эпидемий」, 2020 (국립 레닌그라드 방어·포위 기념관 알렉산드르 쿠투조프 인터뷰)
  • А.Д. Беззубов, 「Витамины для блокадного Ленинграда」, 『Химия и жизнь』 1985년 1호
  • Sparén P 외, 「Long term mortality after severe starvation during the siege of Leningrad: prospective cohort study」, BMJ 2004 (PMC313894)
  • François-Xavier Nérard, 「The siege of Leningrad (1941-1944)」, 유럽사 디지털 백과(EHNE)
  • 행정안전부, 비상시 국민행동요령(비상물자·생활필수품 배급)
  • 한국에너지공단, 『집단에너지사업 편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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