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 독감 대유행, 필라델피아와 세인트루이스는 왜 결과가 갈렸나
같은 독감이 덮쳤지만 미국 도시마다 휴교와 집회 금지를 시작한 날이 달랐고, 사망자가 몰린 정도도 크게 갈렸습니다. 필라델피아와 세인트루이스의 2주 차이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와 두 편의 역사 역학 연구로 짚습니다.

사건 개요
1918년에 퍼진 인플루엔자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최근 역사에서 가장 심각했던 대유행으로 꼽는 병입니다. 원인은 조류에서 온 유전자를 가진 H1N1 바이러스였습니다. 흔히 '스페인 독감'이라고 부르지만 CDC는 바이러스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아직 합의된 결론이 없다고 적습니다.
1921년에 이 유행을 기록한 의사 모리츠는 그해 4월 스페인에서 시작돼 5월 미국으로 건너왔다고 썼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내용을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
CDC 추정으로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인 약 5억 명이 감염됐고, 사망자는 최소 5천만 명입니다. 연구에 따라 5천만~1억 명으로 잡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약 67만 5천 명이 숨졌습니다. 다섯 살 아래 아이와 65세 이상 노인뿐 아니라 20~40세의 건강한 젊은이도 많이 숨진 것이 이 유행의 드문 특징이었습니다.
이 리포트는 병의 정체보다 도시가 어떻게 대응했고 그 차이가 무엇을 갈랐는지를 봅니다. 백신도 항생제도 없던 때라, CDC의 표현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격리와 개인위생, 소독, 집회 제한 같은 비약물적 조치뿐이었고 그마저 도시마다 고르지 않게 쓰였습니다. 약이 없던 시절에 쓸 수 있는 수단은 시기와 방법뿐이었습니다.
시간대별로 본 경과: 필라델피아의 2주, 세인트루이스의 이틀
필라델피아에서는 9월 중순부터 해군 기지에서 환자가 늘었고, 9월 17일 첫 민간인 환자가 보고됐습니다. 그런데도 시 보건 당국은 이 병의 위험을 낮게 보았습니다. 9월 28일에는 전쟁 국채 판매를 위한 퍼레이드가 예정대로 열렸고 약 20만 명이 거리에 모였습니다.
퍼레이드 며칠 뒤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펜실베이니아주 보건 당국은 10월 3일 극장과 술집 같은 오락 시설을 닫게 했고, 시 보건위원회는 같은 날 학교와 교회를 닫았습니다. 그때는 이미 병원이 차고 의사와 간호사가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10월 둘째 주와 셋째 주에 걸쳐 필라델피아의 사망자는 한 주 수천 명 규모로 불어났습니다.
세인트루이스의 보건국장 맥스 스타클로프는 9월 말부터 동부 도시의 소식을 지켜보며 의사들에게 환자 신고를 요청하고, 신문에 피로와 술, 사람 많은 곳을 피하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10월 5일 첫 가족 환자가 보고되자 이틀 뒤인 10월 7일 시장과 의료계, 학교, 기업 대표를 모아 폐쇄를 결정했습니다.
8일부터 극장과 오락 시설이 닫히고 모든 공공 집회가 금지됐으며, 9일 학교가 문을 닫았습니다.
Hatchett 등의 연구(2007)는 첫 환자 보고부터 셈한 두 도시의 대응 차이를 약 14일로 봅니다. 인플루엔자가 두 배로 불어나는 일이 서너 번에서 다섯 번 되풀이될 시간입니다. 세인트루이스는 11월 13일부터 조치를 차례로 풀었다가, 11월 27일 환자가 다시 크게 늘고 그 절반이 아이로 나타나자 곧바로 학교를 다시 닫고 16세 미만 아이의 다중이용시설 출입을 막았습니다.
모든 제한은 12월 28일에야 풀렸습니다. 세인트루이스는 한 번 닫고 끝낸 것이 아니라 숫자를 보며 다시 닫았습니다.
무엇이 피해를 키우고 줄였나
결과는 숫자로 갈렸습니다. 1918년 9월 8일부터 12월 28일까지 폐렴·인플루엔자로 평소보다 더 숨진 사람의 비율(초과사망률)을 보면, 필라델피아는 한 주 최고 인구 10만 명당 257명, 누적 719명이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는 조치가 이어지는 동안 한 주 최고 10만 명당 31명, 누적 347명이었습니다. 정점은 약 8분의 1, 누적은 절반 수준입니다.
두 도시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같은 연구가 17개 도시를 비교했더니, 유행 초기에 여러 조치를 함께 시작한 도시는 주간 사망률 정점이 그렇지 않은 도시보다 약 50% 낮았고 유행 곡선도 덜 가팔랐습니다. 누적 초과사망은 약 20% 낮은 경향이 있었지만 차이가 작았습니다.
학교·교회·극장을 일찍 닫은 도시의 정점이 낮았는데, 이 세 가지는 대개 며칠 사이에 함께 닫혀 어느 하나만의 효과는 가려내지 못했습니다. 연구진은 누적 사망자가 아직 10만 명당 20명이 안 됐을 때(감염자가 인구의 3~6%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되는 무렵)의 조치가 가장 뚜렷한 차이를 냈다고 봅니다. 가장 효과가 큰 조치는 환자가 아직 적어 보일 때 내려졌습니다.
얼마나 오래 했는지도 중요했습니다. 미시간대와 CDC 연구진(Markel 등, 2007)은 43개 도시의 24주 기록을 살폈습니다. 가장 흔한 조합은 휴교와 집회 금지를 함께 쓴 것으로 34개 도시(79%)가 택했고, 그 기간은 중앙값 4주였습니다.
일찍 시작한 도시일수록 사망 정점이 늦게 오고 낮았으며 전체 사망도 적었고, 조치를 오래 유지한 도시일수록 전체 사망 부담이 작았습니다.
반대로 조치를 풀면 다시 늘었습니다. Hatchett 등의 분석에서 1918년 대부분의 도시는 2~8주 안에 조치를 풀었고, 주요 조치를 유지하는 동안 2차 유행을 겪은 도시는 한 곳도 없었습니다. 2차 유행은 모두 조치를 푼 뒤에 왔습니다.
잘못된 정보도 피해를 키웠습니다. 9월 21일 필라델피아의 주요 신문들은 원인이 파이퍼균이라는 세균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지만, 원인 바이러스는 그로부터 15년이 지나서야 분리됩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겪은 문제: 간호 인력·생필품·관
가장 먼저 모자란 것은 돌볼 사람이었습니다. CDC 연표는 1918년 가을 미국 전역에서 간호사가 심각하게 부족했다고 적습니다. 많은 간호사가 국내외 군 시설에 나가 있었고, 훈련받은 흑인 간호사를 쓰지 않은 탓도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의사와 간호사 상당수가 전쟁에 동원된 상태에서 유행을 맞았습니다. 시는 의대생과 간호 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도움을 청했고, 클럽 건물과 신학교를 임시 병원으로 바꿨습니다. 이미 정원이 찬 필라델피아 종합병원은 환자를 훨씬 더 받아야 했습니다.
세인트루이스는 돌봄을 동네 단위로 나눴습니다. 적십자 간호위원회가 도시를 구역으로 나눠 간호사와 보조 인력을 배치하는 계획을 내놓았고, 보건국장이 받아들였습니다. 간호사들은 따로 간호받을 길이 없던 환자들의 집을 차례로 찾았습니다. 구급차가 모자라 경찰 순찰차가 환자를 날랐고, 학교 교사들에게도 보건국 자원봉사가 요청됐습니다.
집 안의 살림도 흔들렸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적십자는 아픈 사람에게 침구를 나눠 주고 공동 부엌에 음식과 우유를 댔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이웃들이 가볍게 앓는 사람을 돌보고 형편이 어려워진 집에 음식과 옷을 보냈습니다.
반대로 '이웃에게 도움을 청해도 위험을 무릅쓰려 하지 않았다'는 자원봉사자의 회고도 남아 있습니다. 도움이 닿는 집과 닿지 않는 집이 갈렸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장례가 막혔습니다. CDC 연표에 따르면 필라델피아에서는 매장을 기다리는 시신이 쌓여 일주일 넘게 기다린 경우도 있었고, 냉동 창고가 임시 영안실이 됐습니다. 시는 공무원에게 무덤 파는 일을 맡겼고, 매장 전 사망진단서 발급 규정을 한때 멈췄습니다. 이 유행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도 많았습니다.
오늘 우리 집에 옮기면
1918년과 지금은 다릅니다. 백신과 치료제가 있고, 격리와 치료 같은 절차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정해져 있습니다. 같은 법 제6조는 국민이 감염병 발생 상황과 대응 방법을 알 권리를 가지며, 치료와 격리 같은 조치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적습니다.
남는 몫은 집 안입니다. 1918년 도시들이 겪은 간호 인력 부족과 장보기의 어려움은 오늘은 집에서 버티는 2주의 모습으로 옵니다.
재난편 12-2는 그 2주를 아프기 전에 정해 두라고 합니다. 문을 닫을 수 있고 창문을 열 수 있는 방을 아픈 사람 몫으로 정하고, 화장실이 하나뿐이면 쓴 뒤 닦고 환기하는 순서를 정해 둡니다. 질병관리청 안내서는 아이를 집에서 치료할 때 돌보는 보호자를 고위험군이 아닌 한 사람으로 두라고 했고, 코로나19 생활수칙은 아픈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을 때 마스크를 쓰라고 했습니다.
손은 흐르는 물에 비누로 30초 이상 씻습니다. 1921년 모리츠도 지친 간호인은 제대로 돌볼 수 없고 스스로 병에 걸리기 쉽다며 돌보는 사람의 휴식을 따로 적었습니다.
물건은 평소 쓰는 것의 여유를 조금 늘리는 방식으로 준비합니다. 마스크, 비누와 손 소독제, 작동하는 체온계, 쓰레기봉투, 일회용 장갑, 가족별 처방약 여분이 재난편의 점검 목록입니다. 유행이 커진 뒤 가게가 붐빌 때 사러 나가는 일 자체가 위험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리츠의 한 줄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독감이 있다. 덜 모이면 덜 걸린다.' 세인트루이스가 도시에서 한 일을 우리는 집에서 미리 정해 둘 수 있습니다.
개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 아픈 사람이 쓸 방과 화장실, 식판을 건넬 자리를 가족과 미리 정해 둡니다. 열이 오른 뒤에 방을 비우면 그사이 여러 사람이 아픈 사람과 가까이 지내게 됩니다.
- 돌보는 사람은 고위험군이 아닌 한 사람으로 정하고, 그 사람이 쉬는 시간도 함께 정합니다. 1918년 도시들은 돌볼 사람이 모자라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 마스크, 비누와 손 소독제, 작동하는 체온계, 쓰레기봉투, 일회용 장갑, 가족별 처방약 여분을 평소보다 조금 넉넉히 두고 오래된 것부터 씁니다.
- 장보기와 약 받기를 맡아 줄 이웃이나 친척 한 사람과 문 앞에 두고 가는 방법을 이야기해 둡니다. 혼자 산다면 아플 때 연락할 사람부터 정합니다.
- 119, 질병관리청 콜센터 1339, 사는 곳의 보건소와 시·군·구, 보건복지상담센터 129 번호를 종이에 적어 냉장고 옆에 붙여 둡니다.
- 휴교나 집회 제한 안내가 나오면 '아직 환자가 적은데'라고 미루지 않고 따릅니다. 1918년 미국 도시들의 기록에서 차이를 만든 것은 일찍, 여러 가지를, 충분히 오래 한 조치였습니다.
출처
- Hatchett RJ·Mecher CE·Lipsitch M, 「Public health interventions and epidemic intensity during the 1918 influenza pandemic」, PNAS 104(18), 2007 (doi:10.1073/pnas.0610941104)
- Markel H 외, 「Nonpharmaceutical interventions implemented by US cities during the 1918-1919 influenza pandemic」, JAMA 298(6):644-654, 2007 (doi:10.1001/jama.298.6.644)
-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1918 Pandemic (H1N1 virus)」·「1918 Pandemic Influenza Historic Timeline」, CDC Pandemic Influenza Resources (archive.cdc.gov)
- University of Michigan Center for the History of Medicine, 『The American Influenza Epidemic of 1918-1919: A Digital Encyclopedia』 Philadelphia·St. Louis 항목
- The Encyclopedia of Greater Philadelphia, 「Influenza ("Spanish Flu" Pandemic, 1918-19)」, Rutgers University-Camden
- A. A. St. M. Mouritz, 『"The Flu": A Brief History of Influenza in U.S. America, Europe, Hawaii』, Honolulu, 1921 (Project Gutenberg #61607)
-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6조, 국가법령정보센터
- 질병관리청, 코로나19 자가격리 대상자 및 가족·동거인 생활수칙, 재택치료 안내서
- 『대한민국 생존주의 바이블 : 재난편』 12부 「감염병 대유행」, 생존주의 매거진,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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