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주의 뉴스레터 모집조만간 첫 호를 공개합니다. 네이버 메일 등 받으실 주소를 남겨 주세요. 신청하기
생존 리포트 · 전쟁분석 리포트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1945 · 9분 읽기 · 2026.10.05

히로시마·나가사키 1945, 같은 거리에서 누가 살아남았나

두 도시에서 폭심지와의 거리가 같아도 어떤 사람은 살았고 어떤 사람은 살지 못했습니다. 미국 정부 피해 조사와 방사선영향연구소 자료, 피폭자 증언으로 그 차이를 만든 벽과 그늘, 첫 몇 초와 첫 하루를 짚습니다.

연출 이미지

사건 개요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국이 투하한 우라늄 원자폭탄이 히로시마 상공에서 터졌습니다. 사흘 뒤인 8월 9일 오전 11시 2분에는 플루토늄 폭탄이 나가사키 상공에서 터졌습니다. 두 폭탄 모두 땅이 아니라 상공 500~600미터에서 터졌고, 위력은 히로시마가 TNT 약 1만 5천 톤, 나가사키가 그보다 큰 약 2만 톤 안팎으로 추정됩니다.

정확한 사망자 수는 지금도 모릅니다. 방사선영향연구소(RERF)는 군 기록이 불탔고, 가족 전체가 숨져 신고할 사람이 없었으며, 도시에 있던 강제 동원 노동자 수도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히로시마시는 1945년 12월 말까지 히로시마에서 약 14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나가사키시는 같은 기간 나가사키의 사망자를 약 7만 4천 명으로 집계합니다.

이 리포트는 폭탄의 정치적 의미보다, 같은 도시의 같은 거리에서 누가 살아남았고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는지를 봅니다. 미국 정부의 피해 조사를 정리한 『핵무기의 효과』(Glasstone), RERF와 히로시마시의 자료, 그리고 두 도시 피폭자의 증언을 함께 읽었습니다.

증언은 원문을 옮기지 않고 사실만 다시 썼습니다. 거리만큼이나, 그 순간 어디에 있었느냐가 생사를 갈랐습니다.

시간대별로 본 경과: 경보 해제부터 몇 주 뒤까지

히로시마에서는 그날 아침 공습경보가 울렸다가, 기상 관측기 한 대만 지나가자 해제됐습니다. 미국 에너지부 기록에 따르면 8시 15분의 시내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불이 번지지 않게 건물을 허무는 작업에 나온 여성과 아이들로 붐볐습니다. 나가사키도 이른 아침의 경보가 풀린 지 한참 뒤였습니다. 두 도시 증언에는 경보가 풀려 안심하고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거듭 나옵니다.

첫 몇 초는 섬광, 열, 폭풍의 순서였습니다. 폭심지에서 3.7킬로미터 떨어진 기상대의 수석 기상관은 섬광을 보자 훈련받은 대로 바닥에 엎드려 눈과 귀를 막고 초를 셌고, 5초째에 유리창이 날아갔다고 증언합니다.

나가사키 요새사령부의 한 장교도 섬광에 몸을 엎드리고 몇 초 뒤 폭풍을 맞았다고 기억합니다. 섬광과 폭풍 사이의 이 몇 초가 몸을 낮출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다음은 불이었습니다. 히로시마에서는 도시 곳곳에서 동시에 난 불이 곧 하나로 합쳐졌고, 사방에서 불 쪽으로 빨려 드는 거센 바람이 몇 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Glasstone). 이 불은 약 11제곱킬로미터를 태웠습니다. 나가사키는 좁은 계곡 지형이라 이런 불 폭풍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두 도시 모두 수도관이 터져 불을 끌 물이 모자랐습니다.

폭발 한 시간쯤 뒤부터는 굵고 검은 비가 내렸다고 여러 증언자가 말합니다. RERF에 따르면 바람 때문에 이 비는 폭심지가 아니라 히로시마 서쪽(고이·다카스 일대)과 나가사키 동쪽(니시야마 일대)에 주로 내렸습니다. 증언자들은 이 비가 불을 끄지 못했고, 갈증에 받아 마셔도 목마름이 가시지 않았다고 기억합니다.

겉으로 멀쩡하던 사람도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며칠에서 몇 주 사이 머리카락이 빠지고, 피부에 보라색 반점이 생기고, 고열에 시달렸습니다. 미국 에너지부 기록과 Glasstone은 방사선병으로 숨진 사람이 폭격 몇 주 뒤에 많았다고 적고, 증언자들도 그 무렵 탈모와 반점이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생사를 갈랐나: 거리, 그리고 그 순간 있던 자리

가장 큰 변수는 거리였습니다. 히로시마시는 폭심지 1.2킬로미터 안에 있던 사람의 약 절반이 그날 숨졌고, 폭심지에 가까울수록 80~100%가 숨졌다고 추정합니다. Glasstone도 폭심지 약 1킬로미터 안에서는 80% 넘는 사람이 죽거나 다쳤지만, 약 2.6킬로미터 밖에서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정리합니다.

같은 거리라도 어디에 있었느냐가 결과를 바꿨습니다. 히로시마에서 적어도 20일을 넘겨 절반이 살아남은 평균 거리를 비교하면, 밖에 있던 학교 관계자는 약 2.1킬로미터, 건물 안에 있던 학교 관계자는 약 0.7킬로미터, 콘크리트 건물 안에 있던 사람은 약 0.2킬로미터였습니다(Glasstone 표 12.17). 같은 자료는 폭심지 1킬로미터 안의 일본식 목조 가옥에서는 절반 넘게 방사선으로 숨진 것으로 보이지만, 같은 거리의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는 그런 죽음이 드물었다고 적습니다. RERF도 보통 가옥 안에 있으면 방사선량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설명합니다.

증언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폭심지 300미터의 은행 건물 안에 있던 20세 직원은 등에 100곳 넘는 상처를 입고도 살아남았습니다. 1.2킬로미터 떨어진 16세 소년의 집은 창고 그늘에 가려 첫 폭풍을 덜 받았고, 무너진 집에 묻혔던 가족 다섯 명도 모두 살아 나왔습니다.

반면 1.4킬로미터 지점 학교 운동장에서 조회를 기다리던 14세 중학생은, 동급생 60명 가운데 증언 당시 살아 있는 사람이 10명뿐이라고 말합니다. 나가사키에서는 1.5킬로미터 지점 철근콘크리트 학교 건물 안에 있던 어머니와 두 살 아이가 다치지 않았고, 폭심지 북쪽 능선 너머 마을은 무사했습니다. 같은 거리에서도 벽 하나, 그늘 하나가 결과를 갈랐습니다.

섬광 화상도 많았습니다. Glasstone은 한여름이라 얇은 옷을 입고 밖에 있던 사람이 많아 섬광 화상이 늘었다고 보고,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도 생존자 화상의 대부분이 불길이 아니라 섬광 그 자체로 입은 것이었다고 정리합니다.

옷의 짙은 무늬대로 화상이 남은 사례가 기록될 만큼, 옷 한 겹과 벽 한 장도 열을 가렸습니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은 대개 섬광 화상을 피했습니다.

건물 안이 안전하기만 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깨진 유리가 방마다 날아들었습니다. 2.7킬로미터 밖 집에 있던 사진기자도 유리 파편에 다쳤고, 3.7킬로미터와 5킬로미터 밖에서도 유리창이 산산이 깨졌습니다. 더 큰 위험은 무너진 건물에 깔리는 일이었습니다.

생존자 가운데 뼈가 부러진 사람이 약 4%에 그친 것은 그런 부상이 적어서가 아니라, 걷지 못한 사람이 불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Glasstone과 미국 에너지부 기록은 함께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겪은 문제: 오지 않는 구조, 물, 가족

구조는 이웃과 동료의 손이 전부였습니다. Glasstone에 따르면 히로시마에서는 소방서가 무너져 장비와 인력 대부분이 움직이지 못했고, 길은 잔해로 막혔습니다. 한 증언자는 도구가 없어 맨손으로 흙과 기와를 파내 가족을 꺼냈고, 들보에 깔린 이웃은 끝내 꺼내지 못한 채 불을 피해 떠나야 했다고 말합니다. 다른 직원은 동료들을 덮은 두꺼운 판자를 돌로 두드려 뚫는 데만 한 시간쯤 걸렸습니다.

물도 모자랐습니다. 수도관이 터지고 수압이 떨어져 불을 끌 물도 마실 물도 부족했습니다(Glasstone, 미국 에너지부, 히로시마현). 생존자들은 터진 수도관에서 흐르는 물로 정신을 잃은 동료를 깨우고, 강물에 몸을 담가 화상의 열을 식혔습니다. 갈증에 검은 비를 받아 마시려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가족을 찾아 시내로 들어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5킬로미터 밖 집에 있던 44세 어머니는 딸을 찾아 시내로 들어갔다가 검은 비를 맞았고, 몇 달 사이 탈모와 반점을 겪었다고 증언합니다. 다만 땅에 남은 방사선은 빠르게 줄었습니다.

히로시마시는 폭심지에서 받을 잔류 방사선이 24시간 뒤에는 폭발 직후의 1,000분의 1로 줄었다고 설명하고, 히로시마시와 RERF 모두 잔류 방사선의 약 80%가 하루 안에 나왔다고 봅니다. 공중에서 터진 1945년의 폭탄에서는 폭심지 땅의 잔류 방사선이 첫 하루에 대부분 나왔습니다.

몸의 상처만 남은 것은 아닙니다. 한 생존자는 유리에 다친 사람을 너무 많이 봐서 10년 가까이 창가에 앉지 못하고 벽을 등지고 앉았다고 말합니다. RERF는 지금도 생존자들을 추적하며, 백혈병 위험은 시간이 지나며 줄었지만 다른 암의 위험은 평생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같은 일이 생기면

행정안전부 『비상시 국민행동요령』(2026)은 피해 규모를 나가사키 폭탄과 같은 20킬로톤을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폭풍으로 4킬로미터 안의 건물과 사람이 피해를 입고, 열로 2.5킬로미터 안이 다 타며, 초기 방사선과 낙진으로 최소 30킬로미터 안까지 인명 피해가 난다는 것입니다.

1945년의 기록이 보여 주듯 대부분의 사람은 폭심지가 아니라 그 바깥에 있고, 그 바깥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핵 경보가 울리면 가까운 지하시설이나 유리창이 없는 건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시간이 없거나 섬광을 봤다면 몇 초 안에 그 자리에 엎드려 양손으로 눈과 귀를 막고, 입은 벌리고, 배는 바닥에 닿지 않게 합니다. 폭풍과 떨어지는 파편이 멈출 때까지 그대로 있습니다. 3.7킬로미터 밖의 기상관도 훈련받은 대로 엎드려 눈과 귀를 막았습니다.

1945년의 두 폭탄은 공중에서 터져 낙진이 비교적 적었다고 FEMA와 Glasstone은 설명합니다. 땅 가까이에서 터지면 흙과 먼지가 방사성 물질을 묻힌 채 넓게 내려앉습니다(Glasstone). 그래서 행정안전부 지침은 폭풍과 떨어지는 파편이 멈추면 낙진이 오기 전에 콘크리트 건물 지하 깊은 곳으로 옮기고, 출입구와 환기구를 막고, 2주 정도 머물라고 합니다.

2주 뒤면 방사선이 1,000분의 1 수준으로 줄기 때문입니다. FEMA도 최소 12~24시간은 들어가서, 머물고, 방송을 들으라고 합니다. 섬광 뒤 몇 초, 폭풍 뒤 몇 분, 그리고 첫 하루에 할 일이 각각 다릅니다.

검은 비의 기억은 물에 대한 준비로 이어집니다. 행정안전부 지침은 시간이 있으면 음식물을 밀폐 용기에 넣고 식수를 담은 병과 장독의 뚜껑을 닫아 두라고 합니다. 경보 뒤에는 바깥 빗물이나 뚜껑 없이 둔 물을 마시지 않고, 미리 밀봉해 둔 물과 식품부터 먹습니다.

개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1. 집과 직장, 아이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 공간(지하주차장 최하층, 지하철역, 민방위 대피소)을 미리 걸어서 확인해 둡니다. 경보 뒤 몇 분 안에 닿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2. 섬광을 보면 창 쪽을 보지 말고 몇 초 안에 엎드려 눈과 귀를 막고 입을 벌립니다. 폭풍과 파편이 멈출 때까지 그대로 있습니다.
  3. 폭풍과 떨어지는 파편이 멈추면 낙진이 내려앉기 전에 콘크리트 건물 안쪽이나 지하로 옮기고, 출입구와 환기구를 막은 채 최소 하루, 당국 안내에 따라 2주까지 머뭅니다. 그 2주를 버틸 물과 식량은 그 공간 가까이에 미리 둡니다.
  4. 경보가 해제된 뒤에도 정부 방송을 계속 켜 두고, 다시 경보가 울리면 바로 움직일 수 있게 가장 가까운 대피처를 머릿속에 둡니다. 1945년 두 도시 모두 경보가 풀린 뒤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5. 바깥 빗물, 뚜껑 없이 둔 물, 밖에 있던 음식은 당국이 확인해 줄 때까지 먹지 않고, 미리 밀봉해 둔 물과 식품부터 씁니다.
  6. 당장 다친 데가 없어도 몇 주 사이 탈모, 피부 반점, 출혈, 고열이 생기면 바로 구호소나 의료기관에 알립니다. 1945년에도 이 증상은 몇 주 뒤에 나타났습니다.

출처

  • Glasstone S·Dolan PJ, 『The Effects of Nuclear Weapons』 3판, 미국 국방부·에너지연구개발청, 1977
  • FEMA, 『Planning Guidance for Response to a Nuclear Detonation』 3판, 2022
  • 방사선영향연구소(RERF), 「Frequently Asked Questions about the Atomic-bomb Survivor Research Program」 (rerf.or.jp)
  • 히로시마시, 「Q. How many people died because of the atomic bombing?」·「Q. Is there still radiation in Hiroshima and Nagasaki?」 (city.hiroshima.lg.jp)
  • 나가사키시, 「Damage Caused by the Atomic Bombing」 (nagasakipeace.jp)
  • 히로시마현, 「The Path from the Atomic Bombing to Reconstruction of Hiroshima」 (히로시마시 『Hiroshima Pocket Peace Guide』 인용)
  • 미국 에너지부 OSTI, 「The Atomic Bombing of Hiroshima, August 6, 1945」·「The Atomic Bombing of Nagasaki, August 9, 1945」 (The Manhattan Project: An Interactive History)
  • Atomic Archive, 「The Voice of Hibakusha」 히로시마 피폭자 증언집
  • 국립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사망자추도평화기념관, 피폭 체험기 데이터베이스(나가사키)
  • 행정안전부, 『비상시 국민행동요령』, 2026

실제 경보·재난 상황에서는 정부·지자체의 공식 안내를 먼저 따르세요. 이 글은 대비를 돕는 참고 자료입니다.

생존 리포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