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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주의자 수기 · 빅스버그 포위 1863 · 9분 읽기 · 2026.10.05

포탄을 피해 언덕에 굴을 판 47일, 빅스버그

1863년 남북전쟁 중 47일 동안 포위된 빅스버그에서 주민들은 언덕에 굴을 파고 살았습니다. 어린 아이와 동굴에서 버틴 메리 앤 러프버러의 수기를 원문 번역과 함께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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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미국 남북전쟁 빅스버그 포위 때의 기록입니다. 지금의 행동 지침이 아니라 역사 자료로 읽어 주세요.

땅을 파고 들어간 47일

1863년 미국 남북전쟁 중, 미시시피강 가의 도시 빅스버그는 북군에 둘러싸였습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에 따르면 남부연합군은 47일 동안 포위를 버티다 7월 4일 항복했습니다. 이 글은 그 도시 안에 어린 아이와 함께 갇혔던 메리 앤 러프버러가 이듬해 1864년에 펴낸 수기 『My Cave Life in Vicksburg』(빅스버그의 동굴 생활)를 바탕으로 합니다. 남편은 남부연합군 장군의 부관이었고, 책에서는 'M'으로만 나옵니다.

포탄이 날마다 도시에 떨어지자 주민들은 집을 두고 언덕에 굴을 팠습니다. 러프버러의 동굴은 입구에서 6피트 들어간 곳이 양쪽으로 갈라진 T자 모양이었고, 한쪽에 침대를, 다른 쪽에 옷방을 두었습니다. 머리 위 흙은 5피트쯤이었고 천장은 아치 모양에 버팀목을 댔습니다.

동굴은 대부분 포탄이 날아오는 강 쪽을 등지도록 팠습니다. 수요가 워낙 많아 굴 파는 일꾼이 크기에 따라 30~50달러를 받았고, 동굴을 사고파는 사람도 생겼다고 적었습니다.

동굴 밖에서 다치고, 동굴 안에서 묻혔다

그녀가 기록한 죽음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동굴 밖입니다. 동굴로 들어가기 전부터 거리에서 파편에 맞아 죽는 사람이 나왔고, 더운 밤 동굴 앞에 나와 자던 하인 소년 조지의 자리에는 깨운 직후 큰 포탄 조각이 떨어졌습니다. 몸이 아파 집을 떠나지 않으려던 한 부인은 남편이 손을 끌어 데리고 나간 직후 박격포탄이 침대를 박살 냈습니다.

다른 하나는 동굴 안입니다. 혼자 동굴에 있던 남자가 무너진 흙에 산 채로 묻혔고, 사람들이 파냈을 때는 이미 숨진 뒤였습니다. 100야드 떨어진 동굴에서는 박격포탄이 흙을 뚫고 들어와 잠든 아이가 숨졌습니다.

패럿 포탄 하나는 러프버러의 동굴 입구로 곧장 날아 들어와 바닥 한가운데서 연기를 냈습니다. 신관이 거의 꺼져 있었고 조지가 집어 던져 살았습니다. 땅속은 파편은 막아 줬지만, 위에서 곧장 떨어지는 포탄과 입구로 들어오는 포탄은 막지 못했습니다.

아껴도 줄어든 식량, 길 건너의 물

처음에는 옥수수빵과 베이컨을 하루 세 번 먹었고, 소고기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편지마다 식량을 아껴 쓰라고 당부했습니다. 곧 완두콩 가루가 식탁에 올랐는데 맛이 없었고 몸에도 맞지 않아, 나중에는 고기와 빵 말고는 먹을 것이 없었다고 적었습니다. 이웃은 효모와 빵 굽는 법을, 장교들은 야전 침대와 천막 덮개를 나눠 주었습니다.

물은 하인들이 포격 중에도 길을 건너가 길어 왔습니다. 저자는 이를 용기로 적었지만, 오늘의 눈으로 보면 물을 구하려고 밖에 나가는 횟수만큼 위험에 드러난 셈입니다. 식사 준비도 마찬가지여서, 포탄이 드문드문해지면 요리하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갔다가 빨라지면 다시 들어왔습니다.

읽기 전에 시대 배경을 하나 적어 둡니다. 당시 미시시피주에는 노예제가 있었고, 이 기록의 흑인 '하인'들도 그 제도 아래 있던 사람들로 보입니다. 원문 번역에서는 당대의 인종 표현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겼습니다.

무엇이 생사를 갈랐나, 우리 생각

여기서부터는 우리의 해석입니다. 이 기록에서 사람을 살린 것은 흙의 두께와 입구의 방향이었고,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 것은 '잠깐 괜찮겠지' 하고 대피 공간 밖에 머문 시간이었습니다. 더위와 답답함 때문에 입구에 나가 앉았던 밤, 조용해 보여서 밖에서 잠든 밤이 가장 아슬아슬했습니다.

반대로 러프버러가 동굴이 심하게 흔들리자 아이를 안고 무화과나무 뿌리 아래로 옮긴 일은 다르게 읽힙니다. 지금 있는 곳 자체가 무너질 것 같을 때는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도 판단입니다. 우리 전쟁편이 '조용해졌다는 것은 해제가 아니다'와 '붕괴 징후가 있으면 다른 보호공간으로 옮긴다'를 함께 적어 둔 이유가 이 장면에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식량과 물도 같은 흐름입니다. 물자는 처음부터 아껴야 오래가고, 밖으로 나가는 횟수를 줄일수록 덜 위험합니다. 160년 전 동굴과 오늘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다르지만, 입구를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고 두꺼운 구조물 뒤에 머문다는 원칙은 그대로 통합니다.

개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1. 대피 공간에서는 출입구를 정면으로 마주 보는 자리를 피하고, 입구와 직선으로 통하지 않는 두꺼운 구조물 뒤에 머뭅니다.
  2. 포격이나 공습이 잠잠해져도 경보해제 신호가 나올 때까지 대피 공간 밖에 나가 앉거나 자지 않습니다. 조용해졌다는 것은 해제가 아닙니다.
  3. 있는 곳에 금이 가거나 흙과 천장이 떨어지는 등 붕괴 징후가 보이면 해제를 기다리지 말고 다른 보호공간으로 옮깁니다.
  4. 물이 나올 때 깨끗한 용기를 모두 채워 두어, 물을 구하러 밖에 나가는 횟수를 줄입니다. 나가야 하면 이웃과 순번을 정해 한 사람이 받아 옵니다.
  5. 집에 있는 식량과 물이 가족 인원으로 며칠분인지 지금 세어 보고, 상황이 길어질 것 같으면 처음부터 아껴 씁니다.

자료 받기·원문 보기

원문 번역

메리 앤 러프버러, 『My Cave Life in Vicksburg』(1864) 중 10~14장을 생존주의 매거진 팀이 옮겼습니다. 원서는 저작권 보호 기간이 끝난 퍼블릭도메인 자료입니다. 전문은 아래 원문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원서에서 남편의 이름은 'M----'로 가려져 있어 'M'으로 옮겼고, 길이 단위(피트·야드·마일)는 원문 그대로 두었습니다. 원문의 인종 비하 낱말 한 곳은 그대로 옮기지 않고 [비하 표현]으로 표시했습니다.

10장. 근거 없던 포함 공격 걱정 · 포탄이 떨어지다 · 포격의 시작 · 동굴 대피 · 수비대 병력 · 동굴과 동굴 생활

도시 뒤편에서 공격이 있던 날 저녁, 찾아온 신사들에게서 강 위의 움직임으로 보아 그날 밤 포함들이 공격해 올 가능성이 꽤 높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그날 밤 옷을 입은 채로 지냈다. 대포 소리에 놀라 한두 번 벌떡 일어나기도 했지만, 어두운 베란다에서 한참 기다려 보니 도시는 완전히 고요했고, 우리의 걱정이 쓸데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 날 전장 쪽에서 포탄 두세 발이 날아와 집 근처에서 터졌다. 우리가 처음 겪은 충격이었고, 큰 충격이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집 뒤쪽으로는 감히 가지 못했다.

하인 몇은 우리 곁으로 와 몸을 낮추고 보호를 구했고, 다른 이들은 포탄 따위는 우습다는 듯 하던 일을 계속했다.

저녁이 되자 박격포탄이 요란하게 날아드는 소리와 비명 같은 소리에 우리는 겁에 질려 몹시 동요했다. 우리는 집 근처의 작은 동굴로 달려가 그 밤을 그 안에서 보냈다. 그때쯤 우리는 잠을 못 자 지칠 대로 지치고 거의 넋이 나가 있었다.

몇몇 사람이 거리에서 포탄 파편에 맞아 죽은 터라, 동굴은 분명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내가 얼마 전까지 자던 방은 첫날 밤 포탄 파편에 맞아 천장에 큰 구멍이 났다. 그날 밤의 극심한 두려움, 다시는 아침 햇빛을 보지 못하리라는 완전한 절망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공포에 질린 우리는 동굴 안에 웅크리고 있었고, 포탄은 연달아 쉴 새 없이 날아왔다. 나는 거의 틀림없이 닥쳐올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비하려고 쉬지 않고 기도했다. 대포 소리가 들리고, 포탄이 우리 쪽으로 날아오는 거세고 무서운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이 멎는 듯했다. 포탄이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귀를 먹먹하게 할 만큼 커졌다. 공기는 그 거센 소리로 가득 찼고, 관자놀이에 통증이 꽂혔고, 귀는 뒤엉킨 소음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포탄이 터지면 그 소리가 전기 충격처럼 머릿속을 관통했고, 그 뒤에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숨죽인 공포만 남았다. 나는 구석에 웅크린 채 아이를 가슴에 끌어안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라고는 숨이 막힐 듯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뿐이었고, 그 때문에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포탄이 한 발씩 동굴에 못 미쳐 떨어지거나 넘어가 떨어질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그 밤 내내 그 끔찍한 공포가 몇 번이고 다시 덮쳐 왔다.

포탄 하나가 동굴 입구 바깥 길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불꽃처럼 떨어져 땅을 뒤흔들었고, 파편들은 낮게 노래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죽음의 일을 하러 날아갔다.

아침이 되었을 때 우리는 살아 있다기보다 죽은 사람에 가까웠다. 얼굴은 핏기가 없었고 입술은 떨렸다. 동굴로 피해 들어온 한 남자가, 박격포탄은 떨어질 때 우리 위에 덮인 흙의 두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을 때도 조금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날이 밝자 좀 더 용감해진 부인 몇 사람이, 그렇다면 당신은 여기 왜 들어와 있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한 시간 동안 말이 없다가 나가 버렸다. 날이 저물어 가도록 포탄은 여전히 날아왔지만 우리는 아직 무사했고, 그래서 조금은 용기가 났다.

이튿날 아침, 수비대의 식량이 넉넉하지 않아 빅스버그가 아마 한두 주 이상은 버티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들었다. 펨버턴 장군의 참모 한 사람은 수비대의 실제 전투 병력을 헤아려 보니 1만 5천 명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로링 장군은 블랙강 전투 뒤에 아마 1만 명쯤을 데리고 고립되었다고 했다.

부인들은 모두 "아, 절대 항복하면 안 돼요!" 하고 외쳤지만, 그 밤을 겪고 난 나는 정말로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내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전장에 있는 M을 얼마나 자주 생각했는지 모른다. 이 뜻밖의 위험 한가운데 있는 우리를 그가 얼마나 걱정할지. 이 위험 속에서 안전한 쪽은 오로지, 도시에서 적어도 2마일 떨어진 운하 근처 강굽이에서 우리에게 그토록 맹렬하게 포탄을 퍼붓고 있는, 교전 중인 신사들뿐이었다.

포탄이 도시 곳곳에 끊임없이 떨어지자, 주민들은 모두 포위가 이어지는 동안 땅 밑에서 살 준비를 했다. M은 사람을 보내 근처 언덕에 동굴을 파게 했다. 어느 저녁, 아마 포병들이 저녁을 먹고 있었는지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서 우리는 건너가 동굴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M의 친구로, M이 부관으로 있는 장군의 참모부에서 경리관으로 일하는 사람의 보살핌을 받았다. 양옆으로 이웃이 있었다. 동굴들이 들어선 높은 둑 아래에서 여러 하인이 식사를 준비하는 바깥의 살림 풍경은, 구경꾼이 보았다면 꽤 재미있는 광경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포탄이 빠르게 떨어질 때는 하인들이 안전을 위해 안으로 들어왔고, 식사는 한동안 다 지어지지 못한 채 기다렸다. 그러다 포탄이 몇 분씩 간격을 두고 드문드문 떨어지면 요리하는 사람들이 다시 일하러 나갔다.

어떤 집들은 발효 빵을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 두고, (젖 짜는 시간 사이에 소가 죽지 않는다면) 우유와 함께 그것만 먹으며 더는 요리하지 않고 지내다가, 떨어지면 다시 만들었다. 우리 대부분은 옥수수빵과 베이컨을 하루 세 번 먹었고, 그 식사에서 유일한 사치는 따뜻하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밀가루가 조금 있어서 그것으로 딱딱하고 질긴 비스킷을 자주 만들게 했다. 소다도 효모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는 소고기도 구할 수 있었다. 한 신사 친구는 고맙게도 자기 야전 침대, 좁은 스프링 매트리스를 내주었는데 비좁은 동굴 안에 아주 편하게 들어맞았다. 또 다른 사람은 햇볕을 막아 주려고 우리 거처 입구 위에 자기 천막 덮개를 쳐 주었다. 이렇게 나는 많은 호의를 받았고, 섬세하고 친절한 배려를 베풀어 준 군의 여러 신사들에게 신세를 졌다. 그때의 고생을 돌아보면, 모든 궁핍을 막아 주려 애쓴 그들의 친절을 언제까지나 감사하며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땅 밑에서 살림을 꾸리며 규칙적으로 일을 해 나갔다. 우리의 새 거처는 땅을 파낸 굴로, 입구에서 6피트 들어간 곳에서 양쪽으로 갈라져 T자 모양을 이루었다. 한쪽 날개에는 내 침대가 들어갔고, 다른 쪽은 일종의 옷방으로 썼다. 이쪽은 본 동굴 바닥보다 흙을 한두 피트 더 깊이 파 내려가 있어서 나는 여기서 허리를 펴고 설 수 있었다. 거처의 다른 곳에 앉아 있는 게 지겨우면 몸을 숙여 이 안으로 들어가 꼿꼿이 선 채 가만히 쉬었다. 늘 포탄을 기다리며 사는 생활에서 몇 안 되는 변화였다. M의 하인이 언덕 아래 보호받는 곳에서 우리 음식을 만들었다. 우리 거처는 정말로 비좁았지만, 그런 식으로 땅 밑에 사는데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편안했다.

적어도 포탄 파편으로부터는 안전했다. 파편은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다만 박격포탄이 하필 우리 머리 위 땅에 곧바로 떨어진다면 우리 동굴이 조금이라도 막아 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우리는 천장을 아치 모양으로 만들고 버팀목을 댔는데, 버팀목 기둥들이 비좁은 거처에서 자리를 많이 차지했다. 위쪽 흙은 5피트쯤 되었고 단단하게 다져져 보였다. 그래도 가엾은 M은 들어올 때마다 천장을 살펴보았다. 동굴이 받는 충격 가운데 어떤 것 때문에 천장에 금이 가 우리 위로 무너질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11장. 산 채로 묻히다 · 부서진 집 · 밤에 보이는 포탄 · 무화과나무 뿌리 아래에서

어느 오후, 포탄이 날아들고 터지는 소리 사이로 외침과 비명이 일었다. 떨어지는 포탄의 날카로운 소리 가운데 들려오는 여자들의 비명이었다. 하인 소년 조지는 한두 번 나갔다가 되돌아왔다. 겁이 호기심을 이겼던 것이다(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마침내 용기를 내어 비명이 들려오는 근처 협곡으로 간 그는, 한 흑인 남자가 혼자 동굴 안에 있다가 산 채로 묻혔다는 것을 알아냈다. 곧바로 일꾼들이 그를 꺼내려고 달려들었지만, 찾아냈을 때 이 불운한 남자는 이미 숨진 지 꽤 된 것이 분명했다. 그의 아내와 친척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통해하며 울부짖음과 신음으로 공기를 채웠다.

이 일로 나는 내 동굴을 갑절로 의심하게 되었다. 언제든 산 채로 묻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같은 날 또 다른 일이 있었다. 빅스버그에 사는 한 신사가 큰 동굴을 파 놓고 아내에게 집을 나와 그리로 들어가자고 거듭 권했다. 아내는 한사코 거절했다. 몸이 꽤 아팠던 그녀가 침대에 누워 있을 때, 그가 아내의 손을 잡고 함께 가자고 하도 강하게 우기는 바람에 그녀는 마침내 따랐다. 두 사람이 집을 나서자마자 박격포탄 하나가 집을 뚫고 떨어져, 방금 비운 침대를 완전히 박살 내고 마룻바닥을 뜯어내고 방을 거의 통째로 부숴 버렸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운 뒤 나는 하인들을 곁에 둘러앉히고 동굴 입구에 앉아 박격포선들이 펼치는 눈부신 불꽃놀이를 바라보았다.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포탄은 빠르게 움직이는 별처럼 보였다. 떨어질 때는 너무 빠르게 땅으로 다가와 뒤에 불의 자국을 남기는 것 같았다.

이 밤에는 포탄이 모두 우리 위를 빠르게 지나가고 근처에는 하나도 떨어지지 않아서 우리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소이탄은 더 아름다워 보였다. 공중에서 터지면 불타는 물질과 알갱이들이 크고 맑은 푸른빛과 호박빛 별처럼 이리저리 흩어지며 떨어졌다.

"M 마님." 겁 많은 하인 하나가 말했다. "저 사람들은 우리를 다 죽이고 싶은 건가요? 우리가 다 죽을 때까지 이걸 계속할까요?"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

우리와 함께 있던 하인들은 흔히 흑인들에게 있다고 여겨지는 것보다 훨씬 용기가 있는 듯했다. 그들은 언제든 물을 길으러 길을 건너는 것을 거의 망설이지 않았다. 그 '소년'은 내가 준 권총을 들고 동굴 입구에서 잤다. 그는 내게 "무서워하실 거 없어유. 여기 오는 놈은 누구든 지 몸뚱이를 먼저 넘어가야 할 거구먼유." 하고 말했다.

그는 전장에 있는 M에게 자질구레한 물건을 갖다 주는 일을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어느 날 그가 처한 곤경에 나는 실컷 웃었다. 전장으로 타고 가려고 올라탄 노새가 포탄이 빗발치는 위험한 곳으로 그를 데려가더니, 겁에 질려 갑자기 멈춰 서서는 고집스럽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조지가 발로 차고 때려도 소용없었다. 노새는 끝내 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주먹을 쥐고 노새 머리를 몇 번 세게 때린 뒤 뛰어내려 집으로 달려와 버렸다. 노새는 몇 분 동안 뻣뻣하게 서 있다가, 돌아보고는 조지가 저만치 멀어진 것을 보더니 몸을 돌려 아주 얌전하게 뒤따라왔다.

날마다 전령들이 도시로 들어올 때면 M은 내게 짧은 쪽지를 써 보내 우리 안부를 묻고 포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 주었다. 나도 답장으로 우리가 무사하다고 적었지만, 우리가 처한 위험에 대해서는 늘 조심해서 말했다. 가엾은 M은 우리 걱정까지 하지 않아도 이미 견뎌야 할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 두려움을 가볍게 이야기했는데, 실제로도 두려움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는 매주 직접 들어와 우리 형편을 살폈다. 편지에서 그는 식량을 특히 아껴 쓰라고 당부했다. 앞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벌써 완두콩 가루로 살고 있소. 당신까지 이렇게 되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구려." 나는 최근 동굴에서 맛있는 빵 만드는 법을 배웠다. 동굴 이웃 하나가 효모와 만드는 법을 알려 준 것이다. 나는 그것을 다시 하인 하나에게 가르쳐서, 밀가루를 쓸 때 더 먹음직스러운 모양으로 내놓을 수 있게 했다.

어느 날 아침 식사 뒤, 포탄이 우리 주변에 너무 빽빽하게 떨어지기 시작해서 마치 우리 동굴이 있는 바로 그 자리를 겨냥하는 것 같았다. 두세 발은 동굴 바로 뒤에 떨어졌는데, 땅에 닿기 조금 전에 터져서 파편이 노래하듯 우리 거처 위를 넘어갔다. 동굴이 지나치게 흔들리자 나는 마침내 우리 안전이 몹시 걱정되었고, 산 채로 묻히느니 차라리 땅 밑에서 나가 서 있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아이를 품에 안고 하인들을 불러, 둑 위로 가지를 뻗은 커다란 무화과나무 뿌리 근처의 피난처로 달려갔다. 그 나무가 포탄 파편을 막아 주었다. 포탄이 사방에 떨어지는 가운데 우리가 그곳에서 떨며 서 있을 때, 신사 친구 몇 사람이 다가와 나를 안심시켰다. 나무가 우리를 지켜 줄 것이고 곧 사거리가 바뀔 거라고 했다. 그들이 말하는 동안, 엄청나게 커 보이는 포탄 하나가 비명과 쉿 소리를 내며 우리 동굴 입구 바로 앞, 입구에서 몇 피트 안 되는 곳에 떨어졌다. 거대한 연기와 흙기둥이 솟았고, 우리가 서 있던 땅이 확연히 흔들렸다. 아주 이상하게도 흙이 포탄 주위로 다시 덮여서, 새로 뒤집힌 흙만이 그것이 떨어진 자리를 보여 주었다.

사거리가 바뀌어 그 무서운 포탄들이 우리 너머로 떨어지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몹시 위협받은 우리 거처로 돌아갈 결심을 하기까지는 그보다 더 오래 걸렸다.

돌아와 보니 벽 여기저기에 금이 가 있었지만, 위쪽 흙은 단단히 버티고 있었다. 나는 체념한 채, 그러나 두려움에 떨며 다시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12장. 밤의 화재 · 아슬아슬한 위기 · 달빛 · 전장에서 날아온 포탄 · 일거리와 거래

그동안 다져 온 마음가짐이 무너져, 나는 다시 박격포탄 소리를 극심한 공포 속에 들었고, 오랫동안 애써 얻었던 평정을 되찾는 데 여러 날이 걸렸다. 이날 밤에도 며칠 전처럼 시내에 큰불이 났다. 군 보급품을 가득 채운 큰 창고가 불타고 있다고 했다. 불길은 버림받은 도시 위로 섬뜩한 빛을 드리웠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사이로, 비명과 맹렬한 폭발과 함께 치명적인 파편을 사방으로 내던지며, 우리의 오랜 무자비한 적인 박격포탄이 떨어졌다.

밤은 너무 덥고 동굴은 너무 답답해서 나는 입구에 나가 앉아 보려 했다. 조지는 망을 보다가 포탄이 우리 쪽으로 떨어지면 알려 주겠다고 했다. 곧 대포 소리가 들리면 조지는 동굴 근처 파헤친 흙더미 위에 서서 하늘을 뚫어지게 올려다보았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다. "온다! 넘어간다!" 그러다 다시 "온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이쪽으로 바로!" 그러면 나는 벌떡 일어나 잠깐 동굴로 들어갈지 망설였다. 그러다 포탄이 거세게 내리꽂히는 소리가 들리면 허둥지둥 동굴로 물러났고, 하인들이 뒤따라 들어왔다.

그날 밤은 폭발이 너무 크고 잦아서 거의 잠을 잘 수 없었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기 전 조지는 문 밖에 누워 있었다. 열두 시쯤 일어나 포탄이 지나가며 그리는 여러 갈래 빛줄기를 내다보던 나는, 조지가 입구의 늘 자던 자리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다보니 그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곤히 자고 있었고, 그 근처에 포탄 파편이 여럿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를 깨워 안전하게 입구로 오라고 했다. 그가 움직이자마자 커다란 포탄 조각 하나가 휙 날아왔다. 다행히 조지는 제때 피했고, 그 조각은 그가 방금까지 자던 바로 그 자리에 떨어졌다.

다시 눕기가 두려워 나는 달빛 속에 입구에 앉아 있었다. 입구에 네모나게 들어온 빛 때문에, 잠든 아이가 누운 작은 침대가 동굴의 어두운 벽을 배경으로 도드라져 보였다. 벽에 걸어 둔 작은 거울과 그림 한두 점은 일그러진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작은 옷방 입구를 가린 진홍색 숄은 바깥 주름에 빛이 물들고 안쪽 굴곡은 그림자로 어두워졌다. 어두운 땅속에 스며든 은빛 달빛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했고, 내 마음도 더 가볍고 희망찬 생각으로 아름답게 했다. 세상의 죄가 우리를 어디로 몰아넣었든, 사람이 우리를 아무리 어둡고 무서운 삶에 빠뜨리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해의 따스함과 달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똑같이 축복하시고, 이 땅에서의 수고와 고난이 끝나면 하늘의 평화와 아름다운 삶이 우리 것이 되리라는 희망으로 언제나 축복하신다.

날이 지나도 박격포탄은 줄곧 우리 위를 넘어갈 뿐 근처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위험을 앞에 두고도 꽤 마음을 놓게 되었는데, 그때 참호 맞은편에 있던 연방군 포대 하나가 사거리를 바꿨다. 그 뒤로 매일 저녁 여섯 시쯤이면 패럿 포탄이 윙윙거리며 시내로 날아들어 동굴 주민들을 몹시 겁에 질리게 했다.

우리가 동굴을 팔 때의 방침은 강을 정반대로 등지게 하는 것이었고, 동굴은 모두 될 수 있는 대로 그렇게 만들어졌다. 포탄 파편은 터진 뒤에도 같은 힘으로 한 방향, 앞으로만 계속 날아가기 때문에, 그 진행 방향과 같은 쪽을 향해 있으면 파편이 우리에게 닿을 가능성이 적었다.

그런데 이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전장 쪽에서 대포가 우리 동굴 입구를 똑바로 향해 포탄을 쏘아 대다니. 정말이지, 빅스버그의 여자들에게 마음 놓을 틈은 영영 없는 것일까?

우리가 살던 동굴은 제방에서 다섯 구역쯤 떨어져 있었다. 바로 너머의 언덕에 동굴이 아주 많이 파여 있었고, 그 언덕 근처에 포탄 대부분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포위된 빅스버그에서 동굴은 유행이었다. 대유행이었다. 일을 아는 흑인들이 품을 팔아 크기에 따라 30달러에서 50달러를 받고 동굴을 파 주었다. 어떤 자리가 안전하지 않다고 여긴 많은 사람이 자기 동굴을 운이 덜 좋았거나 준비가 덜 된 다른 사람들에게 팔기도 했다. 동굴 일꾼을 찾는 수요가 워낙 커서 새로운 업종이 생겨나 인기를 끌었다. 일꾼들은 자기 몸의 안전도 지키고 돈도 벌 수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

13장. 도시 뒤편에서 날아온 포탄 · 하늘이 도운 구출 · 흉내 놀이 · 완두콩 가루 · 병원에서 생긴 일

어느 수요일 오후 네 시쯤이었다. 그날 포격은 대체로 여느 때와 다름없었고, 나는 안전하다고 여기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틀림없는 패럿 포탄의 윙윙 소리가 들려,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포대가 참호 쪽에서 사격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입구로 달려가 하인들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들이 들어오자마자 포탄 하나가 입구에서 몇 피트 떨어진 땅에 박혀 터지지 않은 채 묻혔다. 나는 작은 옷방으로 달려갔고, 사방에서 포탄이 우리 주위에 꽂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언제 동굴 안으로 하나가 떨어질지 몰라 나는 벽에 바짝 붙어 웅크렸다. 한 남자가 몹시 겁에 질려 들어와 위험이 지나갈 때까지 머물게 해 달라고 했다. 하인들은 침대 옆 작은 벽감에 섰고, 남자는 내가 있던 작은 곁방으로 피했다. 그가 내 앞, 벽 가까이에 선 지 얼마 안 되어 패럿 포탄 하나가 입구로 빙글빙글 날아들어 우리 모두가 보는 앞, 동굴 한가운데 떨어져 연기를 내며 놓여 있었다. 우리 눈은 그것에 못 박혔고, 당장이라도 끔찍한 폭발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나는 아이를 더 꼭 가슴에 끌어안고 벽 쪽으로 더 붙었다. 우리 운명은 거의 정해진 것 같았다. 안으로 피해 들어온 가엾은 남자가 누구보다 위험에 드러나 있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근처에 있던 커다란 겹담요를 집어 파편을 막으라고 그에게 건넸다. 그렇게 우리는 공포에 질려 그 죽음의 포탄에 눈을 고정한 채 잠시 있었다. 그때 하인 소년 조지가 앞으로 뛰어나가 포탄을 움켜쥐고 길거리로 던진 다음 반대 방향으로 재빨리 달아났다. 다행히 신관이 거의 꺼져 있어서 포탄은 아무 해 없이 떨어졌고, 하인의 대담함과 우리가 기적처럼 살아난 일의 전리품처럼 동굴 입구 근처에 놓여 있었다. 나는 우리가 무사한 것이 너무나 감사했고, 이 일은 하루 동안 동굴 이웃들 사이에서 화젯거리였다. 담요 이야기도 돌았다. 담요가 무거운 포탄 파편을 조금이라도 막아 줄 거라고 생각한 나의 '현명한' 짐작에 모두가 크게 웃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어느 저녁 조지에게 할 말이 있어 동굴 입구로 갔더니, 주변 동굴들에서 모여든 하인들이라는 식견 있는 관객 앞에서 조지가 그 일 전체를 진지한 몸짓극으로 펼쳐 보이고 있었다. 조지는 그 피난 온 남자가 위급한 순간에 구원자 역할을 맡아 포탄을 던져 버릴 거라고 기대했던 모양이다. 기대가 어긋나자, 그는 관객 앞에서 그 남자를 더할 수 없이 우스꽝스럽게 흉내 냈다.

조지는 근처 마차 바퀴에 바짝 몸을 붙이고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방패라도 든 듯 손을 내밀고 극도로 겁먹은 시늉을 하며 움츠러들었다. 구경꾼들은 무척 재미있어했다. 그러더니 그는 인물을 통째로 바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자세를 취했다. 거침없이 모자를 머리 한쪽으로 밀어 젖히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마침 가까이 있던 커다란 포탄 조각으로 느긋하게 걸어가 두 손으로 집어 들고, 실제와는 딴판으로 아무렇지 않게 휘둘러 던졌다. 그러고는 발뒤꿈치로 돌아서서 자부심 강한 흑인 특유의 흔들거리는 걸음으로 마차로 걸어 돌아와, 바퀴에 팔을 기댄 채 관객을 무심하게 둘러보았다. 그 표정은 분명히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떠냐, [비하 표현]들아?" 덕을 본 무리는 곧바로 잘 훈련된 박수부대처럼 웃으며 손뼉을 쳤고, 조지 자신도 곧 함께 웃었다.

얼마 뒤 M에게서 쪽지가 왔다. 조심하고 늘 동굴 안에만 있으라고 간곡히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전장에서 오는 새 위험 때문에 그가 불안해하고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지친 날들이 이어졌다. 해가 지기 전에 죽음이 어떤 끔찍한 모습으로 찾아올지 알 수 없는 길고 지친 날들이었다. M을 괴롭힌 또 하나의 걱정은 우리 식량이 포위가 끝날 때까지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힘든 때가 닥칠 테니 가진 것을 모두 아껴 쓰라고 자주 당부했다. 참호의 병사들은 우리가 먹고 남긴 빵이라도 기꺼이 먹으려 할 거라고 했다. 그들은 온갖 궁핍을 겪고 있었고, 우리 하인들이 도시를 지키는 그 사람들보다 훨씬 잘 먹고 산다는 것이었다. 곧 완두콩 가루가 우리 음식이 되었는데, 아주 맛이 없었다. 알맞은 반죽이 되게 하려면 옥수수 가루를 섞어야 했는데, 옥수수 가루가 완두콩 가루보다 훨씬 빨리 익어서 빵이 반도 익기 전에 타 버렸다. 맛이 묘하고 불쾌했다.

게다가 그것은 곧 몸에 좋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병사들은 다시 남은 옥수수 가루를 배급받게 되었고, 완두콩은 낟알째 고기와 함께 삶아 먹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고기와 빵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정말로 포위의 혹독함과 고난을 겪고 있었다.

그래도 병사들에 비하면 우리는 불평할 것이 없었다. 많은 병사가 도시에서 가장 노출된 곳에 있는 병원에서 아프거나 다친 채 누워 있었고, 주위에는 포탄이 떨어져 터졌다. 포탄 하나는 시내 한가운데 있는 병원을 완전히 관통했지만 터지지 않았고, 환자들이 심한 충격을 받은 것 말고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그 뒤 파편 하나가 같은 건물의 옆벽을 뚫고 들어와 이미 부상으로 누워 있던 병사의 엉덩이뼈를 심하게 부러뜨렸다. 부상자 한두 명은 병원에 있다가 포탄 파편에 맞아 죽기도 했다.

14장. 개들 · 말들 · 동굴을 뚫고 떨어진 포탄 · 어머니의 울음 · 버려진 집들 · 고요

동물들조차 갑작스럽고 끔찍한 죽음에 대한 모두의 두려움을 함께 느끼는 것 같았다. 개들은 그 소음 한가운데서 길을 따라 내달렸다가, 공포에 미친 듯 되돌아오곤 했다.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옆으로 홱 피했다가, 포탄이 터지면 주저앉아 더없이 애처롭게 울부짖었다. 집이 없는 듯 거리를 헤매는 개가 많았다. 조지는 우리 음식을 만드는 불 근처로 몰려드는 개들과 끊임없이 싸웠다.

다른 비참한 생각들 사이로 어느 날 문득, 이 개들이 굶주림 때문에 늑대만큼 무서운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한두 주 사이에 개들은 거의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장교들의 말은 천막 근처 나무에 매여 있었는데, 가까이에서 포탄이 터지면 고삐를 끝까지 잡아당기며 높이 뒷발로 서서 공포에 질려 크게 콧김을 내뿜곤 했다. 밤이면 그 소란 한가운데서 말들이 울부짖다가 낮고 구슬픈 겁먹은 울음으로 잦아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 가엾은 동물들은 사탕수수 줄기 끝과 뽕나무 잎만 먹고 살았다. 많은 노새와 말이 펨버턴 장군의 명령으로 먹이를 찾도록 방어선 밖으로 내보내졌다. 남부연합 소유의 노새는 연대마다 온전한 수레 세 대를 끌 수 있을 만큼만 남겨 두었다. 개인 재산에는 손대지 않았다.

어느 저녁 동굴에 앉아 있는데 가슴이 찢어질 듯한 비명과 신음이 들려왔다. 들으니, 한 어머니가 우리에게서 100야드쯤 떨어진 동굴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 안전하다고 믿으며 아이를 작은 침대에 눕힌 뒤 동굴 입구 근처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박격포탄 하나가 공중을 가르며 날아와 세차게 떨어지더니, 잠든 아이 위쪽 땅으로 파고들어 동굴 안까지 뚫고 들어왔다. 아, 어머니에게는 얼마나 끔찍한 광경이었을까. 포탄은 잠든 작은 머리 윗부분을 짓눌러, 어머니가 가슴에 간직할 마지막 눈길이나 사랑의 말 한마디도 없이 그 어리고 순진한 생명을 앗아 갔다.

나는 네모난 달빛 가까이에 말없이 슬픔에 잠겨 앉아 흐느낌과 울음을 들었다. 죽은 아이를 부르는 어머니의 신음을 들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살아서 어머니의 손길과 사랑을 받고, 어머니와 아이의 끈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다정한 말들을 하던 그 아이를. 아, 그 외로운 작은 무덤! 그토록 멀리 있는데도 늘 내 곁에 있는 무덤. 이 끔찍한 전쟁이 시작되고 여섯 달 뒤에 내가 그곳에 묻은, 햇살 같은 적갈색 머리의 아이!

그 흐느낌과 울음을 들으며 나는 그 밤을, 그 마지막 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사랑하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갑자기 병이 들어 그렇게 놀랐어도 아이는 살아서 내 삶을 축복해 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끔찍한 깨달음! 내 품에 온전히 내 것으로 누워 있다고 믿었던 아이가 빠르게 떠나고 있었다. 저 머나먼 알 수 없는 영원으로 떠나고 있었다! 내 품에서 미끄러져 나간 그 소중한 생명은, 그토록 강하고 그토록 전능하면서도 그토록 자비로운 분의 부름을 받았기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사별한 어머니의 신음은 여전히 부드러운 공기를 타고, 은빛 달빛에 젖은 풍경 위로 흘러왔다. 슬픔을 모르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전에 떨리고 아파 보았던 마음에는 공감의 줄을 울렸다. 그래도 "사랑하다 잃는 것이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보다 낫다." 그렇다.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빛나는, 숨은 생명의 애틋한 기억이 더 낫다. 완전한 비참 속에서 그분의 보좌 앞에 몸을 던졌다가, 결코 다하지 않는 힘, 주님의 힘으로 강해져 일어설 때 위에서 주시는 빛과 위로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더 낫다고 말할 것이다. 삶의 오아시스를 알지 못한 사막은, 지나가는 뜨거운 시로코 바람에 그을리고 시들어도, 새롭고 더 연한 푸르름을 가져다주는 상쾌하고 부드러운 빗방울을 알 수 없다.

빅스버그의 이 삶은 얼마나 슬픈가! 우리 주위의 그 많은 사람이 아침 햇빛을 보고도 다시는 밤을 보지 못하는데,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안전이란 얼마나 작은가! 나는 그 많은 슬픔이 들리는 곳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집의 낮은 입구 앞을 왔다 갔다 했다. 법원 종이 열두 번 울렸다. 어린 생명이 꺼진 그 자리 주변에는 아직도 포탄이 드문드문 떨어졌지만, 친구들이 그곳을 오가고 있었다.

전쟁의 손길이 이 도시를 얼마나 황폐하게 짓누르고 있었는지! 부드러운 달빛 속에서도 그것이 보였다. 닫힌 채 버려진 집들, 문이 반쯤 열린 정원, 더없이 아름다운 꽃과 풀 사이에 서 있는 소들! 돌보지 않은 모습과 서둘러 떠난 흔적이 어디에나 보였다. 이 위태로운 때에 주민들은 오직 제 몸의 안전과 동굴 집이 얼마나 튼튼한지만 걱정했다.

고통에 찬 신음은 점점 뜸해지고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사별한 어머니는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그리고 깨어나면 가슴에 묵직한 통증을 느끼고, 정신이 막 돌아올 때는 그게 무엇인지 의아해할 것이다. 그러다 아이를 돌보던 마음이 돌아오고, 새로운 슬픔이 다시 그녀를 찾아올 것이다. 떠났다, 영원히 떠났다!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며칠이 걸릴 것이고, 그런 뒤에 그녀는 몸부림치며 강해질 것이다. 이 슬픈 전쟁의 세월 동안 고통받고 몸부림치며 강해지는 가엾은 사람의 마음을 하느님께서 자비로 도우신다! 이제 아무도 오가지 않았다. 고요한 도시에 아직 생명이 고동치고 있음을 알려 주는 말소리 하나 없었다.

신선한 공기가 아침이 오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대포들은 잠잠했다. 잠시 동안 평화가 어지러운 도시를 다스렸다. 완전한 고요 속에서 나는 눈꺼풀이 무거워졌고, 다시 침대를 찾았다. 이번에는 밝은 아침 햇빛이 우리 위로 밝아 올 때까지 편히 쉬었다.

출처

  • Mary Ann Loughborough, 『My Cave Life in Vicksburg, with Letters of Trial and Travel』, D. Appleton and Company, 1864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35700, https://www.gutenberg.org/ebooks/35700)
  •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빅스버그 국립군사공원, 「The Siege of Vicksburg」 (https://www.nps.gov/vick/learn/historyculture/vicksburgsiege.htm)
  •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빅스버그 국립군사공원, 「Surrender: July 4, 1863」 (https://www.nps.gov/vick/learn/historyculture/vicksurrender.htm)
  • 생존주의, 『대한민국 생존주의 바이블: 전쟁편』 1-5, 3-5, 4-6, 9-2, 9-4

원문: 퍼블릭도메인(저자 1887년 사망). 번역: 생존주의 매거진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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