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긷는 줄에 포탄이 떨어지던 도시, 사라예보
1,425일 동안 포위된 사라예보. 물을 긷고, 불빛을 숨기고, 터널로 빠져나간 주민들의 기록입니다.

두 사람의 기록
사라예보는 1992년 4월부터 1996년 2월까지 1,425일 동안 포위됐습니다. 도시를 둘러싼 산 위에서 사격이 이어졌고, 구호 배급 명부 기준으로 약 38만 명이 도시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 글은 두 기록을 바탕으로 합니다. 하나는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가 1993년 7월 13일, 포위 15개월째에 주민 여럿을 취재한 기사입니다. 다른 하나는 포위가 시작될 때 막 10대가 된 소년 알딘이 어른이 되어 2023년에 남긴 증언입니다. 지금 사라예보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그는 그 시절을 다시 꺼내 말하기까지 10년쯤 걸렸다고 했습니다.
연료가 끊기자 물 긷는 줄이 생겼다
1993년 7월 무렵 사라예보에는 전기가 석 달 넘게 들어오지 않았고 상수도는 4주 넘게 끊겨 있었습니다. 러시아와 헝가리에서 오던 가스관도 잘렸습니다. 유엔난민기구 대변인은 연료가 없으면 식량을 나눠 줄 수도, 빵 공장 오븐을 돌릴 수도, 우물 펌프로 물을 끌어올릴 수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연료 하나가 막히자 식량과 빵과 물이 한꺼번에 멈춘 셈입니다.
구호식량은 1인당 하루 450그램 남짓이었고, 그해 여름 다시 20퍼센트가 줄었습니다. 들어오는 것은 쌀, 파스타, 밀가루, 콩, 분유처럼 마른 식품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나같이 물이 있어야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물이 끊긴 도시에 물이 필요한 식량이 들어온 것입니다.
펌프가 멈추자 주민들은 몇 군데 남지 않은 샘물터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통에 물을 받았습니다. 그 줄 위로 박격포가 여러 차례 떨어졌습니다. 오염된 물을 마실 수밖에 없게 되면서 한 주 만에 이질 환자가 700건 넘게 보고됐고, 흐르지 못한 하수가 날이 더워지며 썩어 갔습니다.
알딘에게 물 긷기는 조금 다른 의미였습니다. 아이가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구실이었고, 그 길에 다른 아이들과 잠깐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같은 일이 어른에게는 목숨을 거는 노동이었고 아이에게는 숨 쉴 틈이었던 것입니다.
불빛을 숨기고 하루를 나눴다
도시에서는 어떤 불빛도 밖으로 새면 안 됐습니다. 전기가 잠깐 들어와 불을 켜면 산 위에서 곧바로 표적이 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창문에 담요를 덮었습니다. 알딘의 학교는 학교 건물이 아니라 그날그날 다른 아파트 지하실이나 누군가의 집에서 열렸고, 장소는 교사들이 알려 줬습니다.
밤이면 가족과 피란 온 아버지의 친구들까지 한 지하실에 모였습니다. 자동차 배터리를 들여와 저녁 7시 30분 뉴스를 30분만 봤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기 때문입니다. 한 전직 관리자는 아파트 베란다에 금속 선반을 세우고 모종 상자를 층층이 올려 채소를 길렀습니다.
딸의 결혼식 상에서 구호품이 아닌 음식은 그 베란다 샐러드 하나뿐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저격수가 겨누는 구간을 경험으로 외워 피해 다녔지만, 포격만은 끝내 예측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터널은 여정의 시작에 불과했다
1995년, 아버지의 친구인 보스니아군 대령이 찾아와 곧 도시에 나쁜 일이 생길 수 있다며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라고 권했습니다. 알딘은 대령을 따라 도시 밑으로 판 터널에 들어갔습니다. 통과하려면 국방부 통행증이 필요했습니다. 안에는 무릎까지 물이 차 있었고, 바로 옆으로 전기와 가스와 연료가 지나는 관이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터널을 나와서도 제니차까지 50킬로미터가 남아 있었습니다. 밤을 기다려 해발 1,500미터 이그만 산을 넘었고, 모두 24시간이 걸렸습니다. 도착한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카페에 앉아 점심을 먹고 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첫날 오렌지와 바나나와 사과를 하나씩 먹고 탈이 났고, 의사는 열흘 동안 과일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래 굶은 몸에는 회복도 조심스럽게 와야 했던 것입니다.
무엇이 생사를 갈랐나, 우리 생각
여기서부터는 우리의 해석입니다. 사라예보의 기록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은 포탄 자체보다 물을 받으려고 줄을 서야 했던 상황입니다. 집 안에 물이 있었다면 그 줄에 서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연료처럼 하나의 끈이 끊기면 여러 생활이 한꺼번에 멈춘다는 점입니다.
알딘의 집이 배터리를 정해진 30분에만 쓴 것은 전기가 귀할 때 정보를 지키는 현명한 방식으로 보입니다.
오늘 한국의 조건과 견줘 보면 공식 기준은 이 교훈과 맞닿아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의 2026년 비상시 국민행동요령은 비상식량을 가급적 조리 없이 먹을 수 있는 간편식으로 준비하고, 정부 안내방송을 듣기 위해 라디오 건전지를 넉넉히 따로 보관하라고 권합니다. 마른 구호식량과 배터리 뉴스로 버틴 사라예보를 떠올리면 이 두 줄이 왜 들어갔는지 이해가 됩니다.
개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 비상식량의 절반 이상은 물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채웁니다. 마른 쌀과 면만 쌓아 두면 물이 끊길 때 함께 막힙니다.
- 물을 받으러 나가지 않아도 되도록 집 안에 생수를 두고, 단수 예보가 나오면 욕조와 큰 통부터 채웁니다.
- 건전지 라디오와 여분 건전지를 따로 보관하고, 정전이 길어지면 뉴스 듣는 시간을 정해 전력을 아낍니다.
- 밤에 불빛이 새지 않도록 두꺼운 커튼이나 담요를 창 크기에 맞춰 준비해 둡니다.
- 오래 끼니가 부족했던 뒤에는 한꺼번에 많이 먹지 않고 조금씩 늘려 갑니다.
출처
- Christian Science Monitor, 사라예보 포위 15개월째 주민 취재 기사, 1993-07-13 (https://www.csmonitor.com/1993/0713/13012.html)
- Insight Vacations 블로그, 「Tunnel of Hope: A Survivor's Story」(생존자 알딘 증언), 2023-10-06 (https://www.insightvacations.com/blog/tunnel-of-hope-a-survivors-story/)
- 행정안전부 비상대비정책국, 『비상시 국민행동요령』 홍보책자, 2026
실제 경보·재난 상황에서는 정부·지자체의 공식 안내를 먼저 따르세요. 이 글은 대비를 돕는 참고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