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주의 뉴스레터 모집조만간 첫 호를 공개합니다. 네이버 메일 등 받으실 주소를 남겨 주세요. 신청하기
생존주의자 수기 · 파리 포위 1870 · 10분 읽기 · 2026.10.05

돈이 있어도 살 것이 없던 넉 달, 포위된 파리

1870년 보불전쟁 중 넉 달 넘게 포위된 파리에서 사람들은 말과 고양이, 쥐, 동물원 코끼리까지 먹었습니다. 영국 기자 헨리 라부셰르가 남긴 포위 일기를 원문 번역과 함께 읽습니다.

연출 이미지

1870~71년 보불전쟁 파리 포위 때의 일기입니다. 지금의 행동 지침이 아니라 역사 자료로 읽어 주세요.

넉 달 동안 닫힌 200만 명의 도시

1870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스당에서 항복한 뒤에도, 새로 선 정부는 독일의 강화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독일군은 1870년 9월 19일 파리를 둘러쌌고, 포위는 1871년 1월 28일 휴전까지 넉 달 넘게 이어졌습니다.

저자 헨리 라부셰르의 일기에 따르면 1월 1일 막 끝난 조사에서 포위선 안의 인구는 정규군·기동대·수병을 빼고 200만 500명이었습니다.

라부셰르는 런던 신문 『데일리 뉴스』의 공동 소유주였던 영국 기자입니다. 포위된 도시에 남아 쓴 편지를 기구(풍선)에 실어 밖으로 보냈고, 이 편지들은 1871년 런던에서 『포위된 주민의 일기』로 묶여 나왔습니다. 책에는 저자 이름 대신 ‘포위된 주민’이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비꼬는 말투가 많지만, 그 사이사이에 고기 배급량과 가게 값, 장작 사정을 날짜별로 꼼꼼히 남겼습니다.

소에서 말로, 말에서 쥐와 코끼리로

11월 9일 일기에서 고기는 사흘에 한 번 배급됐고, 남은 고기는 그 규모로 다섯 번 더 나눌 분량이었습니다. 닷새 뒤 배급은 1인당 30그램으로 줄었고, 살찐 고양이 한 마리가 20프랑에 거래됐습니다. 12월 초 가격표에는 칠면조 60프랑, 개고기 1파운드 2프랑, 쥐 1프랑이 나란히 적혀 있고, 동물원 동물은 거의 다 먹혀 평균 1파운드에 7프랑쯤 했고, 캥거루는 12프랑이었습니다.

말고기 배급에 이어 개·고양이·쥐, 동물원에서 나온 늑대와 코끼리, 크리스마스 식탁의 낙타 고기까지 올랐습니다. 1월 6일 일기에서 라부셰르는 전날 먹은 코끼리 폴룩스 고기가 “질기고 거칠고 기름졌다”고 적었습니다.

1월 15일 고기 배급은 성인 1인당 하루 27분의 1파운드, 영국 파운드로 셈하면 약 17그램까지 줄었습니다. 그는 또 하나를 짚었습니다. 빵이 유일한 먹을거리가 되자 사람들이 빵을 더 먹어, 하루 밀가루 판매량이 평소보다 3분의 1쯤 늘었다는 것입니다. 재고를 셈할 때 이 변화까지 넣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돈이 있어도 살 것이 없어진 도시

11월에는 ‘돈만 내면 식당에서는 얼마든지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12월 중순 영국인 구호 기금을 맡은 허버트 씨의 사정을 전하며, 라부셰르는 돈이 있어도 빵 말고 무엇을 살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적었습니다.

연말에는 라부셰르 자신의 거래 은행가가 파리를 떠나 어음을 바꿀 수 없게 되었고, 그는 외상으로 호텔에 묵으며 끼니마다 정량을 정해 먹었습니다. 그는 돈이 파리 밖에 있으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같은 배를 탔다고 적었습니다.

물건값도 뛰었습니다. 1월 초 양초는 이틀 사이 25퍼센트 올랐고, 바닥나 가던 싸구려 포도주는 60퍼센트 가까이 올랐습니다. 술과 식료품을 파는 가게는 기근 가격으로 팔았습니다. 배급은 구마다 달라서 몽마르트르에서는 하루 2수어치 말고기뿐이었고, 여자들은 정육점과 빵집 앞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섰습니다.

연료도 같은 길을 갔습니다. 장작이 징발되고 정부가 나무를 베어 냈지만, 방금 벤 생나무는 불을 붙이는 데 한 시간이 걸리고 연기만 냈습니다. 라부셰르의 큰 방은 대개 어는점이었고, 많은 식당이 연료가 없어 문을 닫았습니다. 그는 ‘구두 밑창이라도 먹겠지만 그것도 익혀야 먹는다’고 썼습니다. 먹을 것이 있어도 익힐 불이 없는 상태가 포위 막바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집에 옮기면, 우리 생각

여기서부터는 우리의 해석입니다. 이 일기에서 형편이 나았던 사람은 물자를 미리 손에 쥔 사람이었습니다. 빵을 사흘째 못 구한 동네에서 이웃 마부와 말 반 마리를 소금에 절여 나눠 둔 하인이 그랬습니다. 우리 전쟁편은 가정 비축을 행정안전부 기준 30일분으로 잡고, 처음부터 다 채우기보다 가족이 실제로 먹는 양으로 조금씩 늘려 가라고 적었습니다.

현금도 같은 눈으로 봅니다. 전쟁편 7-7은 이란의 식품 가격을 근거로 현금은 물자를 사는 수단이지 물자 자체가 아니다라고 정리했습니다. 150년 전 파리의 은행 어음과 오늘의 카드 결제는 다르지만, 돈이 있는 곳과 쓸 수 있는 곳이 갈리면 쓸모가 줄어든다는 점은 같습니다.

그래서 1주일분 현금을 여러 권종으로 나눠 두고, 나머지는 물자로 미리 바꿔 두는 편이 낫습니다.

연료는 한국 아파트에서 조건이 다릅니다. 장작을 땔 수 없고, 전기 없이 열을 내는 방법 대부분은 일산화탄소를 만듭니다. 그래서 전쟁편 7-3은 집 전체를 데우지 말고 가족이 한 방에 모이라고 하고, 7-4는 실외용 부탄 난로를 실내에 들이지 말라고 합니다.

줄 서기는 전쟁편 9-2대로 정부가 배급제를 시행하면 그 체계에 등록하고, 허용되는 범위에서 이웃끼리 순번을 정해 한 사람이 받아 오면 줄에 서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개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1. 가정 비축은 행정안전부 기준 30일분을 목표로 하되, 한 번에 채우지 말고 가족이 실제로 먹는 양으로 조금씩 늘려 갑니다.
  2. 현금은 물자를 사는 수단이지 물자 자체가 아닙니다. 값이 오르기 전에 갖춰 둔 비축이 값이 오른 뒤의 현금보다 확실합니다.
  3. 현금은 최소 1주일분을 여러 권종의 소액권으로 나눠, 결제망이 멈춰도 바로 쓸 수 있게 둡니다.
  4. 겨울 정전에는 집 전체를 데우려 하지 말고 가족이 한 방에 모여 외풍을 막습니다. 실외용 연소기기는 실내에 들이지 않습니다.
  5. 정부가 배급제를 시행하면 등록해 공식 경로로 받고, 줄을 서야 하면 허용되는 범위에서 이웃과 순번을 정해 한 사람이 받아 옵니다.

자료 받기·원문 보기

원문 번역

헨리 라부셰르, 『Diary of the Besieged Resident in Paris』(1871) 가운데 1870년 11월 9일부터 1871년 1월 16일까지의 일기에서 식량·물가·연료 대목을 원문 순서대로 골라 생존주의 매거진 팀이 옮겼습니다. 전황과 정치 논평은 덜어 내고 그 자리에 (중략)을 표시했습니다. 원서는 저작권 보호 기간이 끝난 퍼블릭도메인 자료이며, 전문은 아래 원문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화폐(프랑·상팀·수)와 단위(파운드·인치·마일)는 원문 그대로 두었습니다. 옮긴 대목에 [비하 표현]으로 가릴 말은 없었고, 1월 4일 식료품상이 독일군을 ‘훈족, 반달족’이라 부른 말은 인물의 대사라 그대로 옮겼습니다. 영국인 필자 특유의 비꼬는 말투도 고치지 않았습니다.

1870년 11월 9일 (수요일)

(중략)

다음은 파리의 한 해 고기 소비량 통계다. 이것을 보면 이 도시에 다시 식량을 채워 넣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거세한 소 15만 6,680마리, 황소 6만 6,028마리, 암소 3만 1,095마리, 송아지 12만 275마리, 양 91만 6,388마리. 지금 고기는 사흘에 한 번 배급된다. 듣기로는 지금의 배급 규모라면 다섯 번 더 나눠 줄 만큼 남아 있다고 한다. 그다음에는 말과 우리가 가진 소금에 절인 식량에 기대게 된다. 말은 아마 한 주쯤 갈 것이고, 절인 식량은 얼마나 갈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 그래도 밀가루와 포도주, 커피는 사실상 끝없이 있다. 그러니 파리 사람들이 목숨을 잇는 데 꼭 필요한 것만으로 만족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우리를 굶겨서 항복시키는 일은 오래 걸릴 것이다.

1870년 11월 14일

(중략)

『르 탕』이 우리 식량 사정을 이렇게 전한다. 소고기는 한 주 뒤에 떨어지고, 그다음 말고기가 두 주, 절인 고기가 다시 한 주, 채소와 말린 과일, 밀가루 같은 것이 세 주쯤 더 간다는 것이다. 나는 이 계산에서 밀가루 재고가 적게 잡혔다고 생각한다. 빵과 포도주만으로 사는 데 만족한다면 1월 중순까지는 굶어서 항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고기 배급은 이제 거의 모든 구에서 1인당 30그램으로 줄었다. 그러나 돈만 내면 식당에서는 얼마든지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값싼 대중식당(부이용)에서는 손님 한 사람에게 한 접시만 내준다. 고양이 값이 올랐다. 살찐 고양이 한 마리가 이제 20프랑이다. 남아 있는 고양이들은 몹시 사나워졌다. 오늘 아침 나는 쥐 살미를 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개구리와 토끼 중간쯤 되는 맛이었다. 나는 다른 신문사 통신원 두 사람과 아침을 먹었다. 한 사람은 얼마간 망설이다가 내가 쥐 다리 하나를 덜어 주는 것을 받아들였고, 먹고 나서는 테리어처럼 더 먹고 싶어 안달했다. 다른 한 사람은 경멸하듯 이 식사에 끼기를 거부했다. 그는 소고기라는 이름이 붙은 소금 절인 말고기를 먹으면서 우리를 공포와 혐오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집트에 있을 때 그곳 사람들이 쥐를 먹는 것을 보고 내가 품었던 감정도 그와 비슷했던 것이 생각난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은 너그러워진다. 다시 아프리카에 가게 되면 기회가 닿을 때마다 그 나라 음식을 먹을 생각이다. 런던데리 포위 때는 쥐 한 마리가 7실링에 팔렸다. 이 포위가 몇 주 더 이어지면, 웬만한 형편의 사람이 자기에게 허락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이따금 생쥐 한 마리가 될 것이다. 식당 주인이 계산서에 쥐를 쥐라고 대놓고 적을지 궁금했다. 그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계산서에는 ‘사냥고기 살미’라고 적혀 있었다.

1870년 11월 15일

(중략)

영국의 3일 자 신문에서, 베르사유에서는 우리에게 생고기가 열이틀분밖에 없다고 믿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 사정은 그 정도로 나쁘지 않다. 황소와 암소가 아직 몇 마리 남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며칠 전 나는 큰 우리 하나에서 1,500마리를 직접 세었다. 신문들은 포위가 시작될 때 파리에 말이 10만 마리 있었고 지금은 7만 마리가 있으며, 군대에는 3만 마리면 충분하니 4만 마리를 먹을 수 있다고 계산한다. 말 한 마리에서 나오는 고기가 평균 500파운드이니 신선한 말고기가 2,000만 파운드 있는 셈이고, 지금의 고기 소비 속도라면 석 달 넘게 버틸 양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숫자는 크게 부풀려졌다. 지금 파리에 말은 4만 마리를 넘지 않을 것이다. 마차 회사인 프티트 부아튀르가 8,000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며칠 전 정부에 팔겠다고 했지만 그 제안은 거절당했다. 소금에 절인 고기는 정부가 그 양을 비밀로 한다. 그러나 포위가 시작된 뒤에 잡은 짐승에서만 나온 것이므로 많을 수는 없다. 밀가루 재고는 사실상 무한하다고들 하고, 파이와 고급 과자에 낭비하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가 전혀 없는 것을 보면 당국도 그렇게 여기고 움직이는 모양이다.

파리의 건강 상태는 결코 좋지 않고, 겨울 날씨가 본격적으로 닥치면 병이 많이 돌 것이다. 아주 굶어 죽어 가는 사람은 없지만, 영양이 모자란 사람은 많다. 정부는 형편이 어려운 모든 사람에게 10상팀어치 빵 교환권을 주고, 빵집은 모두 이 교환권을 돈처럼 받는다. 각 구에는 ‘절약 식당’이라는 곳도 있어서, 채소와 약간의 고기로 끓인 수프 한 그릇을 5상팀에 살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옷을 나눠 주는 일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처 마을에서 10만 명 넘는 사람이 파리로 들어왔고 그 대부분이 공공 또는 민간의 자선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절대적인 궁핍은 없다 해도 고통은 클 것이 분명하다. 포위가 식량이 바닥날 때까지 이어지면 그 뒤 몇 주 동안 수천 명이 굶어 죽을 것이라는 비스마르크 백작의 말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이 불행한 나라를 돕고 싶은 자선가들에게 권하고 싶다. 구급대에 돈을 내기보다, 영국과의 연락이 다시 열리는 즉시 파리에 식량을 들여보낼 준비를 해 두라고.

(중략)

1870년 12월 5일

(중략)

‘사치품’ 가격표는 이렇다. 닭고기 테린 16프랑, 토끼고기 테린 13프랑, 닭 한 마리 26프랑, 토끼 한 마리 18프랑, 칠면조 60프랑, 거위 45프랑, 콜리플라워 한 통 3프랑, 양배추 한 통 4프랑. 개고기는 1파운드에 2프랑, 껍질 벗긴 고양이 한 마리는 5프랑, 쥐는 1프랑이고, 하수도에서 잡은 살찐 놈이면 1프랑 50상팀이다. 자르댕 다클리마타시옹 동물원의 동물은 거의 다 먹혔다. 평균 1파운드에 7프랑쯤 했다. 그런데 캥거루는 1파운드에 12프랑에 팔렸다. 어제는 런던의 한 신문 통신원과 저녁을 먹었다. 그는 무플론 고기를 큼직하게 한 덩이 구해 왔는데, 내가 알기로는 코르시카에만 사는 짐승이다. 무플론 맛이 났고 다른 맛은 없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아주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걸 늘 먹으려고 코르시카에 가서 살 생각은 없다.

1870년 12월 6일

(중략)

포위가 언제 끝날지는 권한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저마다 의견이 다르다. 200만 주민이 사는 도시가 지금처럼 궁여지책에 몰렸다면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고기와 소금 절인 생선을 번갈아 나눠 주는 배급은 아직 이어지고 있지만, 겨우 목숨을 붙여 둘 정도도 되지 않는다. 포병대의 말까지 잡기로 마음먹지 않는 한, 우리 공급은 곧 바닥날 것이다. 오늘은 프로이센군이 베르사유를 비웠다는 소문, 프리드리히 카를 공이 루아르강 전투에서 졌다는 소문이 돌지만, 나는 어느 쪽도 크게 믿지 않는다. 사흘째 비둘기가 한 마리도 오지 않았는데, 추위 때문이라고들 한다. 오렐 드 팔라딘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기 전까지는 포위가 풀릴 가능성을 제대로 가늠할 수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힘만으로는 포위선을 뚫을 수 없고, 식량을 다 먹고 나면 항복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1870년 12월 15일

(중략)

지금 파리에 있는 식량 재고에 대해 정확한 자료를 내놓기는 불가능하고, 설령 할 수 있다 해도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다만 개인적인 의견으로, 늦어도 1월 첫 주를 넘겨 저항을 이어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지난 일요일에는 빵 소동이 일어날 뻔했다. 오후 1시가 되자 바깥쪽 변두리의 빵집이 모두 문을 닫았다. 그날 아침 밀가루 판매를 금지하고 가게에 있는 비스킷을 모두 징발한다는 포고가 나오자 사람들이 빵집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정부는 곧바로 빵은 징발하지 않는다는 포고문을 내붙였다. 아침 포고에 대한 설명은, 모자란 것은 밀이 아니라 밀가루이고 이 문제를 풀려고 새 증기 제분소를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대개 소식이 정확한 신문 『라 베리테』는, 클레망 뒤베르누아 씨가 시내에 비축해 둔 밀가루가 며칠 전부터 바닥났고, 지금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인근 도에서 들여온 밀과 거친 가루로 살고 있다고 전한다. 이 신문은 우리 자원을 이렇게 계산한다. 밀가루 3주, 밀 3개월, 절인 고기 15일, 말 2개월. 이런 계산들의 잘못은, 빵이나 곡식이 사람들을 먹여 살릴 유일한 수단이 되면 그것을 더 많이 먹게 된다는 사실을 셈에 넣지 않는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파리에서 하루에 팔리는 밀가루 양이 평소보다 3분의 1쯤 많다. 이유는 단순한데도 아무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프랑스 사람들, 특히 가난한 계층은 영국 사람보다 훨씬 적게 먹고도 산다. 그러나 식욕이 좋은 사람에게 앞날은 결코 안심할 만하지 않다. 블랑슈 거리에는 개와 고양이, 쥐를 파는 정육점이 있다. 손님이 많지만, 아는 사람이 근처에 없는지 조심스럽게 둘러본 뒤 슬그머니 가게로 들어가는 모습은 우습다. 의사들이 쥐고기에 선모충이 가득하다고 하는 바람에 쥐를 꺼리는 분위기가 생겼다. 나로 말하자면, 사람의 친구인 개를 먹을 때는 죄책감이 든다는 것을 고백한다. 며칠 전에 스패니얼 한 조각을 먹었다. 전혀 나쁘지 않았고 양고기 비슷했지만, 식인종이 된 기분이었다. 개고기 미식가들은 푸들이 단연 최고라며, 거칠고 맛없는 불도그는 피하라고 권한다. 개들은 정말 서로 소통하는 방법이 있어서, 옛 친구들이 자기들을 잡아먹으려 한다는 것을 알아챈 것 같다. 가장 하찮은 떠돌이 개도 누가 쳐다보면 으르렁거린다. 『피가로』에는 어떤 남자가 개 떼에게 1마일이나 쫓기며 발치에서 사납게 짖어 대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가 실렸다. 그는 개들이 왜 자기에게 이러는지 알 수 없었는데, 아침에 쥐를 먹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또 다른 기자의 친구는 ‘폭스’라는 개를 먹었는데, 누가 ‘폭스’ 하고 부를 때마다 벌떡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다고 한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신기하기도 하고 진부하기도 한 개 이야기를 담은 책이 잔뜩 나오니, 그 저자들에게 이 두 진실한 이야기를 추천한다. 이야기의 진실성은 파리 기자들이 보증한다. 이보다 나은 증거가 필요한가?

(중략)

1870년 12월 18일

(중략)

내 하루는 이렇다. 아침이면 호텔 심부름꾼이 나를 깨우러 온다. 그는 밤사이 호텔에서 죽은 사람이 몇인지 알려 준다. 많으면 그는 기뻐한다. 업소의 자랑거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베르사유 쪽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분을 풀고, ‘비스마르크 이 악당’ 하고 투덜대며 나간다. 나는 일어난다. 아침을 먹는다. 말고기와 카페오레다. 카페오레의 우유는 백묵 가루를 탄 물이고, 말고기는 그 고귀한 네발짐승의 2제곱인치쯤 되는 조각이다. 그다음 신문 열두 개를 사서 다 읽고 나면, 새로운 소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오전 11시쯤 된다. 친구들이 들르거나 내가 친구들에게 들른다. 이게 얼마나 갈지 이야기한다. 친구가 프랑스인이면 우리는 숭고하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오후 1시에 순환 철도를 타고 이 성문 저 성문으로 간다. 근무 중인 국민방위대와 실랑이를 한 뒤 성문을 지난다. 전초 지대를 두어 시간 어슬렁거린다. 망원경으로 프로이센군을 찾아보고, 포탄이 터지는 것을 구경하고, 참호를 따라 기어가고,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 밭을 헤치고 다닌다. 요즘 민간인에게도 악의를 품게 된 프로이센군은 이따금 머리 한참 위로 총알을 날려 보낸다. 늘 너무 높게 쏜다. 프랑스 병사들은 대개 음식을 만들고 있다. 그들은 소식을 몹시 듣고 싶어 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대개는 전날 있었던 전초전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는 늘 똑같다. 오후 5시, 숙소로 돌아와 흥미로운 외과 수술에 대해 의사들과 이야기한다. 그다음 어느 관리를 찾아가 돌아가는 사정을 묻는다. 관리는 대개 처음엔 신비로운 척하다가 이윽고 말이 많아지고, 수다스럽다고까지 할 만해져서, 자기만 빼고 거의 모든 사람을 욕한다. 오후 7시,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모두가 함께 이야기하고, 거의 모두 군복 차림이다. 화제는 여전히 같다. 이게 얼마나 갈까? 강베타는 왜 좀 더 분명하게 쓰지 않나? 우리는 얼마나 숭고한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얼마나 바보인가. 음식은 적지만 별나다. 오늘 부아쟁 식당의 차림표는 당나귀, 말, 그리고 동물원에서 온 ‘영국 늑대’였다. 한 스코틀랜드 사람이 이 마지막 것은 자기 고향의 여우라고 알려 주더니, 애국심으로 그것을 배불리 먹었다. 나도 먹어 보았는데, 스코틀랜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끔찍했고, 참을성 많은 당나귀로 돌아갔다. 저녁을 먹고 나서 석유등의 침울한 어둠 속에 대로를 어슬렁거리다 숙소로 돌아와 책을 읽는다. 밤 12시, 잠자리에 든다. 밤마다 바로 위층 방에서 관에 못을 박는데, 못을 박는 탁, 탁, 탁 소리가 나를 잠재우는 정다운 음악이다.

(중략)

허버트 씨 말로는, 지금 영국인 구호 기금에 기대는 사람이 1,000명이 넘고, 매주 새로 신청하는 사람이 30명쯤 된다고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영국 사람들이 날마다 구석구석에서 나타난다. 허버트 씨는 파리에 아직 남은 영국인이 3,000명은 될 것이고 거의 모두 빈털터리라고 본다. 얼마 전 프랑스 정부가 그에게 쌀 3만 파운드를 팔았고, 이것과 그가 가진 초콜릿, 리비히 고기 엑기스로 3주쯤 버틸 수 있다고 한다. 포위가 그보다 길어지면 이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없다. 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있어도 빵 말고 무엇을 살 수 있을지, 아니 빵이라도 살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허버트 씨는 리비히 고기 엑기스 같은 휴대용 식량을 가능하다면 파리에 되도록 가까운 곳까지 보내 두었다가, 포위가 풀리는 즉시 시내로 들여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식량이 닿기 전에 이 영국인 가운데 많은 수가 굶어 죽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략)

1870년 12월 21일

(중략)

가난한 계층의 형편을 알아보려고, 어제 클리시 대로 근처 뒷골목 빈민가 몇 곳에 가 보았다. 궁핍이 끔찍하다. 반쯤 굶주린 여자와 아이들이 제대로 몸을 가릴 옷도 없이 문간에 앉아 있었다. 장작도 코크스도 없어서 집 안보다 밖이 더 따뜻하다고 했다. 국민방위대원 다수가 돈을 집에 가져가지 않고 술에 써 버린다. 그래서 여자와 아이들만 남은 가족이 많은데, 이 관료주의의 나라에서는 그들이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 정하는 동안 굶도록 내버려 두는 모양이다.

(중략)

어제는 파리를 떠난 친구의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러 앵페라트리스 거리에 갔다. 집을 지키는 하인 말로는, 그 동네에서는 사흘째 빵을 구하지 못했고, 지난번 배급표를 냈을 때 받은 것은 반 인치쯤 되는 치즈였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살아요?’ 하고 물었다. 그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지 수상쩍게 둘러보더니 나를 지하실로 데려가 통에 든 고기를 가리켰다. ‘말 반 마리예요.’ 그는 살해한 희생자의 시체를 보여 주는 사람 같은 말투로 말했다. ‘이웃 마부가 잡았는데, 우리가 소금에 절여서 나눴죠.’ 그러고는 벽장을 열었는데, 그 안에 커다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먹으려고 살찌우는 중이에요. 생쥐를 소시지처럼 빙 둘러서 내놓을 거예요.’ 그가 말했다. 많은 영국 사람이 크리스마스에 칠면조를 먹는 것을 종교적 의무로 여기는데, 고양이를 먹어 치우는 것으로 그 의무를 다한다고 상상해 보라.

(중략)

1870년 12월 25일

(중략)

여기 파리에서는 들판에 나가 꽁꽁 언 병사들과, 불도 없고 먹을 것도 거의 없는 여자와 아이들이 이 ‘제철다운’ 날씨를 몹시 원망한다. 돈이 넉넉하고 옷이 따뜻하고 집이 좋으면 된서리에도 매력이 있지만, 그런 것이 없으면 그리 반갑지 않다.

(중략)

상류층 사이에서는 크리스마스보다 새해 첫날이 더 큰 명절이다. 많은 사람이 그날이 다가오는 것을 어두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신사는 아는 부인들을 모두 찾아가 사탕 한 상자씩을 두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돈보다 친구가 많은 사람에게 이것은 무거운 세금이다. 이 사탕 상자에 300프랑을 쓰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내 친구 하나는 해마다 1,000프랑을 쓴다고 장담했지만, 소문난 거짓말쟁이니 아마 사실이 아닐 것이다. 남자들은 ‘고맙게도 올해는 사탕 세금을 면하겠군’ 하고 말한다. 그러나 부인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 권리를 빼앗기지 않는다. 사탕이 철이 아니라면 배를 채울 만한 것은 아주 철이라는 암시를 강하게 던진다. 소시지를 쟁여 두었다고 알려진 멋쟁이는 아름다운 친구들에게서 칭찬 세례를 받는다. 좋은 양 다리 하나면 틀림없이 가장 콧대 높은 미인의 마음도 얻을 것이고, 감자 여섯 알을 선물하면 평생의 친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영국인들은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쇠려고 힘없이 애쓰고 있다. 어느 영국 식당에서는 이 중요한 날을 위해 칠면조 두 마리를 아껴 두었는데, 불행히도 며칠 전 그것들이 제 운명을 앞질러 고약하게도 기어이 죽어 버렸다. 운 좋은 영국인 하나는 낙타 고기 10파운드를 구해, 칠면조를 대신할 이 별난 음식을 함께 먹어 치우자고 동포 스무 명쯤을 초대했다. 또 한 사람은 단지에 담은 칠면조 고기를 가졌다고 으스대는데, 오늘 그것을 빵에 발라 엄숙하게 먹을 예정이다. 나는 다른 신문사 통신원 한 사람과 저녁을 먹으러 간다. 그와 같은 층에 포위가 시작되기 전에 파리를 떠난 가족이 산다. 궁하면 법도 없다더니, 며칠 전 그는 약간의 부드러운 완력으로 그 집 문을 열었고, 부지런히 뒤진 끝에 식료품 찬장에서 양파 두 개와 감자 몇 알, 햄 하나를 찾아냈다. 이것과, 정직하게 구했다고 내가 믿는 닭 한 마리가 우리의 크리스마스 저녁이 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에 대해 듣는 의견이 이렇게까지 정반대인 것은 참 이상하다. 궁핍 같은 건 없다는 사람도 있고, 이보다 더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사실은 남자들은 이보다 형편이 좋았던 적이 없고, 여자와 아이들은 이보다 나빴던 적이 없다. 남자라면 누구나 총을 메고 어슬렁거리기만 하면 먹을 것은 넉넉하고 마실 것은 넘친다. 집은 춥고 쓸쓸하니 근무가 없을 때는 선술집에서 산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돈을 한 푼도 가져가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와 아이들은 국영 급식소에 가서 수프를 얻고, 구청에 가서 가끔 빵 교환권을 받아 겨우 목숨을 잇는다. 옷은 거의 다 전당포에 들어가 있으니, 그들이 어떻게 얼어 죽지 않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연료로 말하자면, 부자들조차 구하기 어렵다. 정부는 나무를 모두 베고 전당포에 잡힌 옷을 모두 내주겠다고 말하지만, 늘 그렇듯 미적거리며 두 가지 조치를 하루하루 미룬다. 오늘 아침에는 장작이 모두 징발되었다. 이틀 전 파리 구청장 회의에서는 40만 명이 넘는 사람이 구호를 받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중략)

병사들은 지난 며칠 동안 추위로 끔찍하게 고생했다. 섭씨로 영하 12도는 장난이 아니다. 나는 전초에서 스무 시간을 있다 온 주아브 연대 장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감히 불을 피우지 못했고, 오늘 아침에는 포도주와 빵이 둘 다 얼어 있었다고 했다. 천막 안에 작은 난로가 있지만 열은 거의 나지 않는다. 버려진 집 안도 바깥만큼이나 춥다. 창문과 문은 뜯겨 장작이 되었고, 그 자리로 바람이 휘파람을 불며 들어온다.

(중략)

1870년 12월 28일

당나귀라는 긴 귀의 네발짐승을 하도 많이 먹은 탓에, 그 이름난 고집이 우리 몸속에 들어왔다. 우리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지방의 군대가 졌어도 상관없고, 공세를 멈출 수밖에 없게 되었어도 상관없고, 프로이센군이 우리를 포격해도 상관없고, 결국 항복해야 한대도 상관없다. 우리는 따지고 셈하기를 그만두었다. 우리는 ‘상관없다’는 기분에 빠져 있다. 이렇게 충동적인 사람들에게 이 기분이 얼마나 갈지는 말할 수 없다. 우리 위장은 무엇이든 먹게 되었고, 이제는 무엇이든 소화한다.

(중략)

추위가 지독하고, 장작이 없어 고통이 크다. 정부는 되도록 빨리 나무를 베어 내고 있으니, 날이 풀릴 무렵이면 연료가 넘쳐 날 것이다. 그사이 정부는 『관보』에서, 무리 지어 나가 나무와 공원 벤치, 정원 울타리를 베어 가는 약탈자들을 규탄한다. 나는 그들을 탓하지 않겠다. 온도계가 지금처럼 낮고 벽난로에 불이 없을 때, 연료에 관한 한 재산의 신성함은 한낱 추상이 된다.

(중략)

1870년 12월 29일

(중략)

돈이 떨어질 순간을 생각하면 끔찍한 불안이 앞선다. 그때가 되면 어쩌면 나랏돈으로 재워 주고 먹여 주는 것을 고마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거래 은행가는 파리를 떠났고, 그 대리인은 내가 파산할 만한 이자를 주겠다고 해도 내 어음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친구들로 말하자면, 다들 비슷한 처지다. 포위가 이렇게 길어질 줄 아무도 몰랐으니까. 묵는 호텔의 숙박비를 내가 내지 않는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요즘 호텔에서는 손님이 아무리 벨을 울려도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외상으로, 화려한 침대에서 거지로 잔다. 방이 넓다. 더 작았으면 좋겠다. 장작이 방금 베어 낸 나무라서 불을 붙이는 데 한 시간이 걸리고, 붙어도 연기만 내며 그을릴 뿐 열이 나지 않는다. 비단 커튼이 드리운 이 큰 방의 온도계는 대개 어는점에 있다.

(중략)

먹는 것은, 내 밑천을 되도록 오래 늘려 쓰려고 나 자신에게 정량을 정해 준다. 아침과 저녁은 2등급 식당에서 먹는다. 고양이, 개, 쥐, 말은 신기한 맛으로는 괜찮지만, 늘 먹으면 내 속과 잘 맞지 않는다. 의사들 말로는 말고기는 몸을 덥힌다고 한다. 정말 나를 덥혀 주면 좋겠다. 내 생활을 이렇게 적는 것은 다른 많은 사람의 생활도 이렇기 때문이다. 돈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그 돈이 파리 안에 있지 않다면 같은 배를 타고 있다.

(중략)

국민방위대 소속이라 군모를 쓴 상인들도 있다. 그들은 그리 기운이 없다. 재산이 빠져나가고 있고, 입으로는 여전히 ‘항복은 없다’고 외치지만 속으로는 다 끝났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다. 그들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커피와 함께 나온 각설탕을 주머니에 넣는다.

(중략)

어제 내 옆에는, 지난날 불로뉴 숲에서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자주 보았던 여자가 앉아 있었다. 비단과 공단, 보석과 마차는 사라졌다. 그녀의 사치를 대 주던 러시아 공작도, 보야르도, 영국 귀족도 이제 없다. 그녀는 평생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처럼 말고기를 먹고 있었다. 그 고귀한 말을 싸구려 포도주 한 잔으로 넘기는 것을 보며, 나는 이 포위가 모든 계층의 처지를 얼마나 바꾸고 있는지 실감했다.

(중략)

장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신문들은 정육점처럼 장의사에게도 정해진 가격을 매기자고 제안한다. 장의사들이 포위로 너무 큰 이익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값을 터무니없이 올려서, 가난한 사람들은 이제 죽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불평한다.

1871년 1월 1일

(중략)

방금 끝난 조사에 따르면 포위선 안의 인구는 정규군과 기동대, 수병을 빼고 200만 500명이다. 빵은 아직 배급제로 하지 않았지만, 귀리와 쌀을 섞기로 했다. 이 구 구청장 말로는 파리에서 가장 부유한 이 구에는 두 달 먹을 식량이 틀림없이 있다고 한다. 지방에서 아주 좋은 소식이 오고, 두 달만 더 버티면 항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망이 선다면, 구두 밑창을 먹어서라도 2월 말까지 버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쁜 소식이 오면 그런 음식까지 먹지는 않을 것이다. 빵 말고 모든 것이 떨어지면 항복할 것이고, 다른 건 몰라도 명예는 지켰다고 여길 것이다.

(중략)

1871년 1월 2일

(중략)

바깥은 새로운 일이 없다. 동쪽 요새들에 대한 포격은 아직 이어지지만 점점 띄엄띄엄해지고 있다. 이따금 거의 멎었다가 다시 맹렬하게 터진다. 프로이센군이 샤티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 중포가 있다면 방브 요새가 고전할 것이다. 배급량은 몇몇 구에서 조금씩, 그리고 보기 좋게 줄어들고 있다. 18구(몽마르트르)에서는 주민들이 하루에 2수어치 말고기만 받는다. 배급량은 구마다 다르다. 구청장마다 할 수 있는 한 많이 확보하려 하고, 어떤 이는 다른 이보다 수완이 좋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가 큰 불만을 낳는다. 오늘 분위기로는, 트로쉬가 폭동을 피하고 싶다면 곧 출격해야 할 것 같다.

(중략)

1871년 1월 4일

(중략)

모든 것이 걸린 식량 문제는 그대로다. 다만 빵을 배급제로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반관영 신문에서 슬슬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 시민들이 이것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정부는 창고에 밀이 얼마나 있는지 아무 발표도 하지 않는다. 2주분도 안 된다는 사람도 있고, 두 달분은 된다는 사람도 있다. 도리앙 씨는 어제 내 친구에게, 자기가 아는 한 3월까지 버틸 만큼은 있다고 장담했다.

(중략)

조국의 불행으로 돈을 잘 버는 파리 상인은 술장수와 식료품상뿐이다. 그들의 재고는 끝이 없어 보이지만, 기근 가격에 팔린다. ‘이렇게 말하는 저는 조국에 몸을 바친 사람입니다. 그 훈족, 그 반달족에게 항복하느니 어떤 희생이라도 하겠습니다.’ 오늘 아침 한 식료품상이 설탕에 모래를 섞어 팔 것 같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러면서 하찮은 물건, 실은 이틀 사이에 25퍼센트 오른 양초를 팔고 그 값의 열 배쯤을 주머니에 넣더니, 팔짱을 끼고 군모 밑으로 미래를 노려보았다. 엄격하지만 텅 빈 결의였다.

1871년 1월 6일

(중략)

싸구려 포도주가 바닥나고 있다. 값은 벌써 60퍼센트 가까이 올랐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아주 심각한 일이다. 그들은 포도주를 마실 뿐 아니라, 데워서 빵을 넣고 수프로 만들어 먹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에는 폴룩스 한 조각을 먹었다. 폴룩스와 그 형제 카스토르는 잡힌 코끼리 두 마리다. 질기고 거칠고 기름졌다. 소고기나 양고기를 구할 수 있는 한 영국 가정에 코끼리를 권하지 않는다. 많은 식당이 연료가 없어 문을 닫았다. 램프를 쓰라는 권고를 받지만, 프랑스 요리사들이 아무리 형편없는 재료로 놀라운 솜씨를 부린다 해도 알코올램프로 코끼리를 요리하라는 것은 그들의 재주로도 거의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코는 1파운드에 45프랑에 팔렸고, 이 흥미로운 쌍둥이의 다른 부위는 1파운드에 10프랑쯤 받았다. 오늘은 한결 따뜻해져서 볕에 얼음이 녹았다. 추위와 포위가 훨씬 더 오래 이어졌다면, 프로이센군은 우리가 모두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나무를 베는 것이 나무를 태우는 것보다 훨씬 쉽다. 속담이 늘 맞는 것은 아니다. 요즘 쓰라린 경험으로 알게 되었는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은 틀렸다. 이 속담을 만든 터퍼는 생나무를 태워 본 적이 없다.

1871년 1월 15일

(중략)

정부가 우리 식량 재고가 정확히 얼마나 갈지 알아내려고 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일 처리가 하도 허술해서, 우리가 굶어서 항복하게 될 정확한 날짜를 상무장관 자신도 열흘 오차 안으로 아는지 의심스럽다. 고기 배급은 이제 성인 1인당 하루 27분의 1파운드다. 고급 식당에서는 공급에도 값에도 끝이 없다. 당나귀 커틀릿 두 조각이 18프랑이고, 다른 고기도 모두 그런 식이다. 그러나 정말 목숨이 걸린 문제는 빵이 얼마나 가느냐다. 어떤 구에서는 아침 8시면 빵이 떨어지고, 다른 구에서는 주민 한 사람이 식량 카드를 내면 1파운드씩 받는다. 포격당한 구역 사람들이 중심부 구로 몰려와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바람에 배급이 엉망이 되었다. 빵 자체도 형편없다. 한 종류만 만들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빛깔이 검고 무겁고 끈적하고 버석거린다. 보리가 비쌀 때 런던 맥주에 든 맥아만큼이나 밀이 조금 들어 있다. 가난한 계층의 비참함은 날마다 더해 간다. 남자들은 대부분 하루 1프랑 50상팀으로 그럭저럭 살아간다. 아침에는 훈련을 받고, 그 뒤로는 밤까지 카페와 선술집에서 빈둥거리며 먹을 것 대신 마실 것으로 배를 채운다. 꾸준히 일하는 것은 비웃는다. 재단사 주인들은 지금 들어오는 몇 안 되는 주문을 처리할 일손조차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남자들은 나라에서 준 군복으로 따뜻하게 입고 있으니, 바깥에서 실제로 근무하는 행군 대대를 빼면 나는 그들이 불쌍하지 않다. 여자와 아이들은 사정이 다르다. 아이들은 영양 부족과 추위에 시달려 병든 양처럼 죽어 가고, 여자들은 겨우 목숨을 붙여 둘 만큼밖에 먹지 못하며, 그것을 얻으려고 정육점과 빵집 문 앞에 몇 시간씩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견딘다. 가엾게도, 그렇게 하면 프로이센군이 도시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이 그들을 버티게 한다.

(중략)

파리에서 가난한 계층의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단단한 사람들이다. 훨씬 더 고통받으면서 훨씬 덜 불평한다. 나는 아침마다 온기를 나누려고 서로 몸을 붙인 채 쥐꼬리만 한 몫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말없고 참을성 있는 여자들의 무리를 더 존경한다. 북과 나팔 뒤를 따라 행진하며 동상에 화관을 씌우고 무덤을 찾고 차례대로 성벽에 오르는 군대의 영웅들보다, 날마다 아늑한 사무실에서 죽음과 계약을 맺었으니 승리는 확실하다는 선언문을 내는 펜의 영웅들보다 훨씬 더.

1871년 1월 16일

(중략)

이 빈약한 식사를 참게 하려고, 정부에 통조림 고기와 치즈, 버터 같은 사치품, 우리가 그 맛조차 거의 잊은 것들이 엄청나게 비축되어 있고, 사정이 최악에 이르면 고비를 넘겨 모든 것이 넘쳐 나는 시기로 들어갈 것이라는 말을 줄곧 듣는다. 내게 이 비축품은 사막의 나그네를 꾀어 다가갈수록 자꾸 물러나는 신기루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금 가장 어려운 것은 연료를 구하는 일이다. 누군가 말했듯 나는 조국을 위해 구두 밑창이라도 먹을 각오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익혀야 먹을 수 있다. 제분소는 모두 마른강 가에 있어 다가갈 수가 없다. 증기 제분소를 세웠지만 더디게 돌아간다. 창고에 밀이 얼마나 남았든, 날마다 필요한 양을 빻아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중략)

출처

  • Henry Du Pré Labouchere, 『Diary of the Besieged Resident in Paris』, Hurst and Blackett, 1871(제2판)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19263, https://www.gutenberg.org/ebooks/19263)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Siege of Paris (1870~71)」 (https://www.britannica.com/topic/Siege-of-Paris-1870-1871)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Henry Du Pré Labouchere」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Henry-Du-Pre-Labouchere)
  • 생존주의, 『대한민국 생존주의 바이블: 전쟁편』 5-4, 5-5, 7-3, 7-4, 7-7, 9-2, 9-5

원문: 퍼블릭도메인(저자 1912년 사망). 번역: 생존주의 매거진 팀.

실제 경보·재난 상황에서는 정부·지자체의 공식 안내를 먼저 따르세요. 이 글은 대비를 돕는 참고 자료입니다.

생존주의자 수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