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길어지면 이웃은 어떻게 서로 지켰을까요?
수개월 이어진 포위에서 오래 버틴 것은 한 집의 창고가 아니라 건물 단위의 나눔이었습니다. 사라예보의 기록과 지침이 말하는 이웃의 역할을 한국 아파트로 옮겼습니다.

이 글은 『대한민국 생존주의 바이블』 전쟁편 9-1 「사라예보 1,425일: 사람을 죽인 것은 전투가 아니라 이동이었습니다」, 9-2 「사람이 모이는 곳이 표적이 됩니다」, 9-4 「세 단계 비축: 배낭 2~3일, 집 30일, 공동체 수개월」, 9-6 「공동체 단위 생존: 전시에 달라지는 것」의 내용을 매거진으로 풀어 쓴 것입니다.
전쟁이 몇 주가 아니라 몇 달, 몇 년으로 길어지면 무엇이 사람들을 버티게 할까요. 집집마다 쌓아 둔 물건이 먼저 떠오르지만, 기록은 다른 곳을 가리킵니다.
1992년 4월부터 1,425일 동안 포위되었던 사라예보는 3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는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의 이웃들이 무엇을 나눴는지에 답이 있습니다.
사라예보가 남긴 기록
구유고슬라비아국제형사재판소의 판결문은 사람들이 다친 곳이 전선이 아니라 물을 받는 줄, 빵 배급 줄, 시장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을 긷고 땔감을 모으는 일을 어둡거나 안개 낀 시간으로 미뤘습니다.
그 도시를 겪은 사람들의 회고에는 공통된 장면이 나옵니다. 우물과 발전기를 나눠 쓰고, 노인에게 식량을 가져다준 건물 단위의 상호 부조가 개인의 비축보다 오래 갔다는 것입니다.
이웃이 나눈 세 가지
전쟁편이 회고에서 뽑은, 그 공동체가 유지된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전시의 공동체는 물자를 모으는 조직이 아니라 노출을 줄이는 조직입니다.
- 물과 발전기 같은 자원을 함께 쓴다
- 노인처럼 나갈 수 없는 이웃에게 물자를 가져다준다
- 밖에 나가는 일을 순번으로 나눈다
줄은 짧게, 나가는 사람은 적게
배급이나 급수가 시작되면 가족 전원이 매일 같은 시간에 줄을 서는 것보다, 이웃끼리 순번을 정해 한 사람이 여러 집 몫을 받아 오는 편이 밖에 나가는 횟수를 줄입니다. 대리 수령이 허용되는지와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양을 먼저 확인합니다.
다만 한 사람에게 여러 집의 무게를 다 지우지는 않습니다. 물은 무겁고, 계단을 오르면 더 무겁습니다. 시간과 장소는 당국이 정한 범위 안에서 나눕니다.
아파트에서 시작하는 법
거창한 모임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반상회나 관리사무소, 단지 단체대화방에서 세 가지만 물어도 출발이 됩니다. 정전이 길어질 때 연락은 누가 맡는지, 물·발전기·공구는 어느 집에 있는지, 혼자 집을 나서기 어려운 세대는 어디인지입니다.
이웃 대표를 새로 세우기 어렵다면, 입주자대표회의나 통·반장처럼 이미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두는 것만으로도 출발이 됩니다.
대표는 동원 대상이 아닌 사람이 맡는 것이 좋고, 그런 사람을 구하기 어려우면 두세 사람이 순서를 정해 이어받습니다. 여기에 대표가 자리를 비우면 누가 이어받는지, 세대별 정보를 어디까지 공개하는지, 나눔을 두고 의견이 갈리면 누가 어떤 순서로 정하는지까지 정해 두면 그 순간에 처음부터 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낯선 사람을 대하는 원칙도 있습니다. 우리 가족의 이동 계획을 말하지 않는 것과 낯선 사람을 적으로 대하는 것은 다릅니다. 한국전쟁 피난 기록에서 피난민을 위험하게 만든 것은 피난민 속에 적이 있다는 의심이었습니다. 의심이 이웃 안에서 돌기 시작하면 공동체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미리 정해 둘 것
우크라이나의 포위 대비 지침은 위기가 오기 전에 이웃 단위로 이야기해 두라고 합니다. 어려운 주제를 현실이 되기 전에 이야기해 두면 충격이 줄어든다는 것이 지침의 이유입니다. 전쟁편이 한국 아파트에 맞게 정리한 목록은 이렇습니다.
- 행정과 군을 상대할 대표와 교대할 사람
- 발전기, 연료, 물 용기, 공구, 차량을 가진 집
- 물과 배급을 누가 언제 받아 올지
- 식량 보관과 나눔, 위생과 쓰레기 처리
- 떠날 수 없는 세대가 어디인지
오늘 해 둘 일
- 같은 층이나 이미 인사하는 한두 집과 정전 때 서로 안부를 묻기로 이야기해 두기
- 우리 단지 입주자대표나 통·반장이 누구인지 확인해 두기
- 혼자 계단을 내려오기 어려운 이웃이 있는지 한 번 살펴보기
실제 경보·재난 상황에서는 정부·지자체의 공식 안내를 먼저 따르세요. 이 글은 대비를 돕는 참고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