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1939~1945, 공습과 배급 속 영국 서민들은 어떻게 버텼을까?
영국 서민들은 대공습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대피소와 방독면, 소개 계획, 배급 통장을 받아 두었고, 그 준비로 블리츠와 V1·V2 공격을 버텼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배급이 9년을 더 이어지고 한때 빵까지 배급된 과정을 단계별로 따라갑니다.

- 1개전 전 대비1938~1939.8방독면과 앤더슨 대피소, 소개 계획을 전쟁 전에 집집마다 나눠 주었습니다
- 2개전과 소개1939.9~1940.8사흘 동안 약 150만 명이 시골로 떠났고, 공습이 없자 많은 아이가 돌아왔습니다
- 3블리츠1940.9.7~1941.5런던은 57일 밤 연속 폭격을 받았고, 9개월 동안 민간인 4만3천여 명이 숨졌습니다
- 4장기전과 배급1941~1944배급 통장과 텃밭, 아껴 쓰기로 버틴 긴 일상이 이어졌습니다
- 5V1·V2 공격1944.6.13~1945.3.27비행폭탄과 로켓이 떨어지자 세 번째 소개와 깊은 대피소 개방이 뒤따랐습니다
- 6종전과 그 뒤1945.5~1954.7전쟁이 끝난 뒤 빵까지 배급되었고, 식량 배급은 1954년 7월에 끝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전선에 나간 군인만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집집마다 방독면과 대피소가 배달되었고, 개전 첫 사흘 동안 약 150만 명이 도시를 떠났습니다. 그 뒤 6년 동안 서민들은 밤이면 불을 끄고 대피소로 내려갔고, 낮이면 배급 통장을 들고 가게 앞에 줄을 섰습니다.
이 글은 영국 본토의 평범한 가정을 중심으로 전쟁의 단계를 따라갑니다. 군사 작전은 생활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해할 만큼만 적었습니다. 숫자는 영국 국립기록원과 제국전쟁박물관(IWM), 브리태니커 등 두 곳 이상에서 맞는 것을 썼고, 기관마다 다른 숫자는 나란히 적었습니다.
① 개전 전 대비 · 1938년~1939년 8월
영국 정부는 전쟁이 나기 전부터 공습을 전제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1938년 앤더슨 위원회의 소개(疏開) 보고서는 학생과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를 먼저 내보내고, 따로 수용소를 짓는 대신 안전한 지역의 일반 가정에 맡기기로 정했습니다. 이 계획은 1939년 여름까지 대부분 준비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정부는 집 마당에 반쯤 묻고 흙을 덮는 강철 대피소, 이른바 앤더슨 대피소를 보급했습니다. 위험 지역에서 연 소득 250파운드 이하인 가구는 무료로 받았고, 그 위 소득은 돈을 내고 샀습니다. 개전 전까지 약 150만 개가 배달되었고 전쟁 중에 200만 개 남짓이 더 나왔습니다.
방독면은 갓난아기용까지 약 3,800만 개가 지급되었습니다. 공원에는 길에서 경보를 만난 사람이 들어갈 참호식 대피소가 파였습니다.
- 그때 서민들은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강철판을 볼트로 맞춰 대피소를 직접 세웠습니다. 위에 흙을 두툼하게 덮어야 제 구실을 했기 때문에 집마다 삽질이 이어졌습니다.
- 바뀐 것 방독면 상자를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가정에 방 하나를 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방으로 꾸미라고 안내했습니다.
- 버틴 방법 마당이 없는 집은 큰 지하실이 있는 건물을 바꾼 공용 대피소나 일터의 대피소를 썼습니다. 직원이 많은 공장과 사업장은 1939년 민방위법에 따라 대피소를 갖춰야 했습니다.
② 개전과 소개 · 1939년 9월~1940년 8월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그날 영국은 '피리 부는 사나이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를 시작했습니다. 사흘 동안 약 150만 명이 시골로 옮겨졌고, 대부분이 학생과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였습니다. 영국의 선전포고는 이틀 뒤인 9월 3일이었습니다.
같은 날부터 도시의 밤에는 등화관제가 시작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개전 직후에는 국민등록이 이루어졌고, 이 등록을 바탕으로 배급 통장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몇 달 동안 폭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가짜 전쟁'이라 불린 이 기간에 많은 부모가 정부의 만류에도 아이를 도시로 다시 데려왔습니다. 보건부는 아이를 데려가라고 속삭이는 히틀러를 그린 포스터까지 붙이며 아이를 시골에 두라고 호소했습니다.
- 그때 서민들은 아이에게 목적지를 적은 이름표를 달고 방독면과 가방 하나를 들려 기차에 태웠습니다. 도착한 아이들은 마을회관에 줄을 서서 맡아 줄 가정을 기다렸습니다.
- 바뀐 것 밤거리에서 불빛이 사라졌습니다. 창마다 빛이 새지 않게 가렸고, 지하철역 입구까지 빛이 새지 않도록 임시 구조물로 덮었습니다.
- 버틴 방법 받아들이는 지역의 가정은 아이를 맡는 것이 의무에 가까웠고, 거절하면 벌금을 물 수 있었습니다. 도시와 시골이 아이들을 나눠 맡으면서 학교와 교사도 함께 옮겨 갔습니다.
③ 블리츠 · 1940년 9월~1941년 5월
1940년 9월 7일 토요일, 독일 공군의 대규모 런던 공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첫날부터 큰 피해가 났고, 런던은 그 뒤 57일 밤 연속으로 폭격을 받았습니다. 코번트리, 리버풀, 버밍엄 같은 지방 도시와 항구도 차례로 표적이 되었습니다.
대공습은 1941년 5월 중순 런던 공습을 끝으로 잦아들었습니다. 9개월 동안 영국 전역에서 숨진 민간인은 4만3천여 명입니다(IWM 4만3,500명 이상, BBC 4만3천 명 이상).
정부는 처음에 지하철역을 대피소로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위생과 환기, 열차 운행 방해를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계속 내려가자 당국은 방침을 바꿔 오후부터 승강장에 자리를 잡게 했고, 화장실과 응급 처치, 매점, 침상을 들였습니다.
다만 지하철에서 밤을 보낸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1940년 런던 조사에서 앤더슨 대피소를 쓴 사람이 27%, 공공 대피소가 9%, 지하철역이 4%였고 나머지는 근무 중이거나 집에 머물렀습니다. 지하철역에 가장 많이 모인 밤에도 17만 명 남짓이었습니다.
- 그때 서민들은 사이렌이 울리면 마당의 앤더슨 대피소나 동네 공용 대피소, 지하철역으로 내려가 밤을 보냈습니다. 지하철 승강장에는 흰 선을 그어 선 바깥은 승객 통로로 비웠고, 열차가 끊긴 뒤에야 자리를 넓혔습니다.
- 바뀐 것 앤더슨 대피소는 겨울이면 춥고 비가 오면 물이 찼습니다. 밤마다 천 의자에 앉아 지낸 사람들에게 다리 질환이 생기자 당국은 그런 의자를 대피소에 들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 버틴 방법 지하철 대피자들은 스스로 위원회를 꾸려 질서와 규칙을 정했습니다. 공습이 지나가면 출근하고 장을 보며 일상을 이어 가는 것이 사기를 지키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④ 장기전과 배급 · 1941년~1944년
식량 배급은 1940년 1월 8일 베이컨·햄, 버터, 설탕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기는 같은 해 3월, 옷은 1941년 6월 배급 품목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쿠폰이 든 배급 통장을 받았고, 가정마다 정해진 가게에 등록해야 했습니다.
가게는 등록된 사람 수만큼 식량을 받았고, 쿠폰 방식이라 누구도 자기 몫 이상은 살 수 없었습니다. 어른 한 사람의 베이컨·햄 몫은 일주일에 4온스(약 113그램)였습니다.
1943년 무렵에는 거의 모든 생활용품이 부족하거나 줄을 서야 살 수 있었습니다. 쿠폰 없이 웃돈을 받고 파는 암시장도 생겼습니다.
부족분은 텃밭이 메웠습니다. 1939년 10월 시작된 '승리를 위해 텃밭을(Dig for Victory)' 운동으로 정원과 공원, 학교 운동장이 채소밭이 되었습니다. 시민 텃밭은 1939년 81만5천 곳에서 1943년 140만 곳으로 늘었습니다.
공습이 뜸해진 1943년 3월 3일 밤에는 런던 베스널그린 지하철 대피소의 어둡고 좁은 입구 계단에서 한 사람이 넘어지며 사람들이 겹쳐 쓰러졌고, 173명이 숨졌습니다. 그날 밤 그 지역에 폭탄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고 뒤 계단에 손잡이를 달고 디딤판에 흰 칠을 했습니다.
- 그때 서민들은 배급 통장을 들고 정해진 가게 앞에 줄을 섰고, 앤더슨 대피소를 덮은 흙 위에까지 채소를 길렀습니다.
- 바뀐 것 전쟁 중 빵은 배급하지 않았지만 통밀을 섞은 국민빵이 나왔습니다. 식품부는 짧은 요리 안내와 라디오 방송으로 낯선 재료를 쓰는 법을 알렸습니다.
- 버틴 방법 연료를 아끼려 한 번에 여러 음식을 조리하고, 가족이 한 방에 모여 식사하라는 정부 안내를 따랐습니다. 모자란 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배급의 원칙이 오래 버티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⑤ V1·V2 공격 · 1944년 6월~1945년 3월
1944년 6월 13일, 노르망디 상륙 1주일 뒤 첫 V1 비행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독특한 엔진 소리 때문에 '버즈 폭탄', '두들버그'라고 불렀습니다. 9월 8일부터는 소리보다 빨리 떨어지는 V2 로켓이 뒤따랐고, 마지막 V2는 1945년 3월 27일 떨어졌습니다.
BBC 집계로 V1 공격에 영국에서 6,184명이 숨졌고, V2 공격에 런던에서 2,500명 넘게 숨졌습니다. Forces War Records는 V2 사망자를 2,754명으로 적었습니다.
1944년 여름에는 세 번째 대규모 소개가 있었습니다. 블리츠 때 착공했던 런던 지하의 깊은 대피소도 이때 처음으로 시민에게 열렸습니다.
같은 시기 전쟁의 다른 편 도시들도 큰 공습을 겪었습니다. 1945년 2월 13~15일 독일 드레스덴 공습의 사망자는 드레스덴시가 꾸린 역사가위원회가 2010년 최종 보고서에서 최대 2만5천 명으로 결론 냈습니다. 3월 9~10일 밤 일본 도쿄 공습은 도시의 약 4분의 1을 태웠고, 브리태니커는 사망자를 약 10만 명으로 적고 있습니다.
- 그때 서민들은 V1의 엔진 소리가 멈추면 곧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V2는 소리보다 먼저 떨어져 미리 피할 틈이 거의 없었습니다.
- 바뀐 것 마당이 없는 집에는 집 안에 두는 철제 탁자형 모리슨 대피소가 대안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식탁으로 쓰고 공습 때는 그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 버틴 방법 아이를 다시 시골로 보내고, 깊은 대피소와 지하철로 내려갔습니다. 대피소 안에서는 노래와 춤 모임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⑥ 종전과 그 뒤 · 1945년 5월~1954년 7월
1945년 5월 8일 유럽의 전쟁이 끝났고,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발표했습니다. 같은 시기 나치 독일 정권과 그 동맹·협력자들은 유대인 600만 명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박해하고 살해했습니다.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이를 홀로코스트로 정의합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식탁이 바로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종전 직후 기본 배급량이 오히려 줄었고, 전쟁 중에도 배급하지 않던 빵이 1946년 7월부터 2년 동안 배급 품목이 되었습니다. 1946년의 비 많은 여름과 1947년 초의 혹한이 밀과 감자 수확을 망쳤고, 미국의 재정 지원이 끊겨 전쟁 전만큼 식량을 수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옷 배급은 1949년, 과자 배급은 1953년 2월, 설탕은 같은 해 가을 풀렸고, 1954년 7월 고기를 마지막으로 식량 배급이 완전히 끝났습니다. 1940년 1월에 시작한 배급이 14년 넘게 이어진 셈입니다. 폭격이 심했던 런던 스테프니 같은 지역은 전후 거의 통째로 다시 지어야 했습니다.
- 그때 서민들은 시골에 있던 아이들을 대부분 1945년에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몇 년 떨어져 지낸 가족이 다시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 바뀐 것 빵과 감자 배급, 고래고기와 말고기 같은 대용 식품이 전후 내핍 생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 버틴 방법 배급 덕분에 소득과 관계없이 고른 식단을 얻었고, 우유와 오렌지주스, 대구 간유는 전후에도 임산부와 아이에게 계속 지급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은 것
영국 서민들의 6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영웅적인 장면보다 준비의 순서입니다. 대피소와 방독면, 소개 계획, 배급 통장은 모두 대공습 전에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민방위 연구자 크레슨 키어니는 런던 시민들이 과장된 공포를 내려놓은 뒤 생활이 거의 평소처럼 이어졌다고 적었습니다.
베스널그린의 기록도 남습니다. 대피소가 있어도 어둡고 좁은 입구 하나에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면 그 자체가 위험이 됩니다. 집과 직장, 통근길의 대피소까지 미리 걸어 보고 입구와 계단을 알아 두는 일이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끝난 날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배급은 종전 뒤에도 9년을 더 갔습니다. 비축은 며칠치를 쌓는 일보다 오래 돌려 쓰는 살림의 운영에 가깝다는 것을 이 기록이 보여 줍니다.
개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 집, 직장이나 학교, 통근길 세 곳에서 가장 가까운 대피소까지 한 번 걸어 보고, 사람이 걸어 들어갈 입구와 계단 수, 밤이나 휴일에 문이 잠기는지를 적어 둡니다.
- 경보가 울려 대피했다면 경보해제 방송이 나올 때까지 대피 공간에 머뭅니다.
- 밤에 경계경보가 울리면 커튼을 치고 실내조명을 줄여 집 안 불빛이 밖으로 새지 않게 합니다.
- 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학원, 어린이집마다 가까운 대피소를 알아 두고, 가족 집결지와 연락처를 적은 카드를 아이 배낭에 넣어 둡니다.
- 집에 둔 물과 식량은 유통기한이 짧은 것부터 먹고 새것을 뒤에 채우는 선입선출로 돌려 쓰고, 몇 달 단위는 건물과 동네에서 어떻게 나눌지 미리 정해 둡니다.
- 베란다나 창가에 잎을 따도 다시 자라는 잎채소를 조금씩 길러, 물류가 늦어질 때 가장 먼저 모자라는 비타민 공급원을 둡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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