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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 1914~1918 · 12분 읽기 · 2026.10.05

제1차 세계대전 1914~1918, 후방의 서민들은 배급과 공습, 독감을 어떻게 버텼을까?

영국·독일·프랑스 후방의 서민들은 처음 겪는 공습과 배급표, 순무로 넘긴 겨울과 피난을 4년 동안 견뎠습니다. 전쟁 막바지에 독감 대유행이 겹치고 독일에 대한 봉쇄가 휴전 뒤 8개월을 더 이어진 과정까지 단계별로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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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개전1914.7~1914.12곧 끝날 거라던 전쟁과 함께 피난 행렬과 전시 법령이 시작되었습니다
  2. 2장기전과 첫 공습1915~1916.가을빵 배급표와 비행선 공습, 지하철 대피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3. 3순무의 겨울1916.겨울~1917독일은 감자 대신 순무로 겨울을 났고, 런던에는 낮 폭격이 찾아왔습니다
  4. 4마지막 해와 독감1918.1~1918.10영국의 배급제, 프랑스의 두 번째 피난, 독감 대유행이 한 해에 겹쳤습니다
  5. 5휴전과 그 뒤1918.11~1919.7총성은 멎었지만 독감과 봉쇄, 귀향길은 이듬해 여름까지 이어졌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의 식탁과 밤하늘까지 바꾼 전쟁이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처음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을 겪었고, 독일 도시 사람들은 감자 대신 순무로 겨울을 났으며, 프랑스 북부 사람들은 집을 두고 안쪽 지방으로 피난했습니다. 전쟁 마지막 해에는 독감 대유행까지 겹쳤습니다.

이 글은 영국·독일·프랑스 세 나라 후방의 평범한 가정을 중심으로 1914년 개전부터 1919년 봉쇄가 풀릴 때까지를 다섯 단계로 따라갑니다. 군사 작전은 생활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해할 만큼만 적었습니다. 숫자는 영국 제국전쟁박물관(IWM), 독일역사박물관, 브리태니커, 1914-1918 온라인 국제 백과 등 두 곳 이상에서 맞는 것을 썼고, 기관마다 다른 숫자는 나란히 적었습니다.

① 개전 · 1914년 7월~12월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8월 초 독일·러시아·프랑스·영국이 차례로 뛰어들었습니다. 영국은 8월 4일 독일에 선전포고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짧은 전쟁을 예상했지만 전쟁은 4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영국 의회는 8월 8일 국토방위법(DORA)을 통과시켰습니다. 정부가 농업과 공장, 탄광을 관리하고 신문과 편지를 검열할 수 있게 한 법입니다. 공공장소에서 군사 이야기를 하거나 다리와 터널 근처를 서성이는 일도 금지되었습니다.

독일군이 벨기에와 프랑스 북부로 밀려들자 피난 행렬이 생겼습니다. 영국으로 건너온 벨기에 피난민은 약 25만 명으로, 영국이 한 번에 받아들인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프랑스에서는 9월 초 정부가 파리를 떠나 보르도로 옮겨 갔습니다. 프랑스 안에서도 집을 떠난 피난민이 해를 넘기며 계속 늘었습니다.

  • 그때 서민들은 벨기에 피난민 대부분이 영국 곳곳의 지역 공동체에 나뉘어 머물렀고, 방이나 집을 내준 가정이 많았습니다.
  • 바뀐 것 프랑스 북부와 동부 10개 도에서는 주민 약 200만 명이 독일군 점령 아래 살게 되었습니다. 점령지는 바깥과 오가기 어려운 고립된 생활이었습니다.
  • 버틴 방법 피난민을 받은 프랑스 도청들은 피난민 명단을 만들고 수당과 숙소를 마련했습니다. 출신 도별로 정리한 명단이 수당 지급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② 장기전과 첫 공습 · 1915년~1916년 가을

전쟁이 길어지자 식량부터 흔들렸습니다. 남자와 말이 농장을 떠나 전선으로 갔고 비료 수입이 막히면서 수확이 줄었습니다. 값이 오르고 사재기가 늘자 각국 정부는 기본 식품에 가격 통제를 걸었고, 유럽 도시마다 여성과 아이들이 늘어선 식료품 줄이 흔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점령된 프랑스 북부에서는 식량과 일자리가 모자라자 주민을 비점령 지역으로 내보내는 송환이 이어졌습니다. 1914년 가을부터 종전까지 많은 주민이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 쪽으로 돌아왔습니다. 영국에 남은 벨기에 피난민 가운데 상당수는 영국 군수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었습니다.

해상 봉쇄로 수입길이 막힌 독일은 일찍 배급을 시작했습니다. 1915년 1월 빵 배급표가 나왔고, 같은 해 식량 배급과 공출 관리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른바 전시 빵에는 말린 감자와 귀리, 보리 같은 재료가 점점 더 많이 섞였습니다.

영국에는 하늘에서 위험이 왔습니다. 1915년 1월 19일 밤 독일 비행선 체펠린이 노퍽 해안의 그레이트야머스와 킹스린에 폭탄을 떨어뜨렸고, 5월 말에는 런던에도 첫 공습이 있었습니다. 비행선 공습으로 숨진 사람은 전쟁 전체에서 556~557명입니다(잉글랜드 역사유산청 556명, 1914-1918 온라인 백과 557명).

런던 사람들은 공습이 오면 지하철역으로 내려갔습니다. 1915년부터 역이 대피소로 쓰였고, 가로등을 끄고 집 안 불빛을 가리는 등화관제도 이때 처음 생겼습니다. 지상 구간을 달리는 열차는 공습 중에 창의 블라인드를 내리거나 실내등을 껐습니다.

  • 그때 서민들은 비행선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공습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시설은 단출했지만 많은 사람이 불편을 감수하고 내려갔습니다.
  • 바뀐 것 남자들이 떠난 일자리를 여성들이 채웠습니다. 1915년 포탄 부족을 계기로 영국 군수부가 생겼고, 그 뒤 군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이 크게 늘었습니다. IWM은 이들이 폭약 원료 같은 화학물질을 충분한 보호 장비 없이 다뤘다고 적습니다.
  • 버틴 방법 각국 정부는 빵과 감자 같은 기본 식품 값에 상한을 두어 값이 치솟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가게 앞 줄에 서는 일은 주로 여성과 아이들의 몫이었습니다.

③ 순무의 겨울 · 1916년 겨울~1917년

1916년 가을 궂은 날씨로 독일의 감자 수확이 크게 줄었습니다. 주식인 감자 대신 배급된 것은 평소 가축 사료로 쓰던 스웨덴 순무였습니다. 그래서 1916~1917년 겨울은 '순무의 겨울'로 불립니다.

독일역사박물관은 1917년 무렵 사람들이 하루에 먹는 양이 전쟁 전보다 크게 줄었다고 적습니다. 이 무렵 독일에서는 거의 모든 식품과 석탄 같은 연료에 배급과 가격 통제가 붙었습니다. 배급량이 너무 적어 받으러 갈 가치가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같은 해 영국은 독일 잠수함의 무제한 공격으로 수입 식량이 위협받았고, 하늘의 위협은 비행선에서 폭격기로 바뀌었습니다. 1917년 6월 13일 낮 고타 폭격기 편대가 런던 동부와 시티를 폭격해 민간인 162명이 숨졌습니다. 전쟁 중 영국이 겪은 공습 가운데 가장 피해가 큰 날이었습니다.

1917년 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지 공습 경보가 울리면 많은 런던 시민이 다시 지하철역으로 내려갔습니다. 전쟁 전체에서 런던 공습으로 숨진 사람은 약 670명입니다(런던교통박물관 667명, 런던박물관 668명).

  • 그때 서민들은 독일 도시 사람들은 아침, 점심, 저녁을 순무로 버텼습니다. 독일역사박물관은 그 겨울을 겪은 사람 가운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순무를 먹지 않으려 한 이가 많았다고 적습니다.
  • 바뀐 것 정해진 배급만으로는 모자라 뒷거래와 웃돈 장사가 번졌습니다. 영양이 부족해지면서 독감과 결핵 같은 병도 늘었습니다.
  • 버틴 방법 도시마다 대중 급식소와 거리를 도는 이동 취사차가 값싼 끼니를 냈고, 전단과 전시 요리책이 순무로 끼니를 만드는 법을 알렸습니다. 급식소만으로 굶주림을 다 덜 수는 없었지만, 싼값에 한 끼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④ 마지막 해와 독감 · 1918년 1월~10월

1917년 말 영국에서는 설탕 같은 품목 앞의 줄이 길어지자 일부 지방 정부가 먼저 자체 배급에 나섰습니다. 정부는 1918년 초 런던부터 배급제를 시작해 여름까지 전국으로 넓혔습니다. 그해 여름에는 고기·버터·마가린·라드·설탕을 받는 전국 배급 통장이 나왔고, 사람마다 정해진 가게에 등록했습니다. IWM은 배급이 시작되면서 줄을 서는 일이 줄고 식량이 고르게 나뉘었다고 적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918년 3월 독일군의 봄 공세가 시작되자 북부에서 다시 피난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프랑스 안의 피난민은 이해 여름과 가을에 전쟁 중 가장 많았습니다. 3월부터는 아주 먼 곳에서 쏜 장거리포 포탄이 파리에 떨어졌고, 브리태니커는 이 포격으로 파리 시민 약 250명이 숨졌다고 적습니다.

같은 해 봄 독감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첫 물결은 비교적 가벼웠지만 늦여름부터 훨씬 치명적인 형태가 나타나 가을에 크게 번졌습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918~1919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약 5억 명이 감염되고 최소 5,000만 명이 숨졌다고 집계합니다.

브리태니커는 사망자를 약 2,500만 명, 많게는 4,000만~5,000만 명으로 적어 기관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이 독감으로 약 22만8천 명이 숨졌고, 1918년은 기록이 시작된 뒤 처음으로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은 해가 되었습니다.

  • 그때 서민들은 식품부가 낸 배급 통장과 설탕 등록 카드, 고기 카드를 들고 등록한 가게에서 정해진 몫을 받았습니다.
  • 바뀐 것 독감은 전시 검열 속에서 퍼졌습니다. 검열이 없던 스페인에서 첫 보도가 나와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 버틴 방법 영국 도시들은 거리에 소독약을 뿌렸고,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배급과 감염병 대응이 같은 해에 함께 돌아갔습니다.

⑤ 휴전과 그 뒤 · 1918년 11월~1919년 7월

1918년 11월 11일 휴전이 맺어져 총성이 멎었습니다. 전쟁 전체 사망자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기준 약 1,600만 명이고, 브리태니커는 군인 약 850만 명과 민간인 많게는 1,300만 명으로 적습니다. 기관마다 집계 범위가 달라 숫자가 다릅니다.

전쟁은 휴전한 날 끝나지 않았습니다. 독감의 세 번째 물결이 그해 겨울 다시 찾아왔고, 독일에 대한 해상 봉쇄는 1919년 6월 베르사유 조약이 서명된 뒤 7월 12일에야 완전히 풀렸습니다.

흉작과 연료 부족, 봉쇄가 겹친 4년 동안 독일에서 전쟁 전보다 늘어난 민간인 사망자는 집계에 따라 크게 다릅니다. 1918년 12월 독일 제국보건청은 약 76만3천 명, 1928년 독일 학술 조사는 42만4천 명으로 집계했고, 독일역사박물관은 최대 70만 명으로 적습니다.

피난민의 귀향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프랑스 피난민은 독일군이 물러나기 시작하면서 하나둘 집으로 향했지만, 무너진 마을이 많아 귀향은 휴전 뒤에도 오래 걸렸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에 머물던 벨기에 피난민도 1918년 11월부터 1919년 봄 사이 대부분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 그때 서민들은 독일의 아이들에게는 봉쇄가 풀린 뒤 외국의 식량 원조가 닿았습니다. 1914-1918 온라인 백과는 이 원조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아이들이 비교적 빨리 회복했다고 적습니다.
  • 바뀐 것 전선과 점령을 겪은 프랑스 북부는 무너진 집과 마을을 다시 짓는 긴 재건에 들어갔습니다. 프랑스 국방부의 기억 누리집은 이 시기를 폐허와 대재건의 시간으로 소개합니다.
  • 버틴 방법 점령지 주민들은 전쟁 내내 국제 구호 조직이 들여온 식량으로 버텼습니다. 벨기에구호위원회와 그 프랑스 쪽 조직인 북부프랑스급식위원회가 그 일을 맡았습니다. 독일 당국은 이렇게 들여온 식량을 징발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은 것

1차 대전의 후방에서 서민의 하루를 지킨 것은 거창한 장면보다 정해진 몫을 공평하게 나누는 체계였습니다. 영국의 배급 통장과 가게 등록, 독일의 공동 급식소, 프랑스 도청의 피난민 명단은 모두 모자란 것을 줄 세워 나누는 장치였습니다. 그리고 그 체계는 등록을 거쳐야 작동했습니다. 오늘의 배급제도 지자체가 공지하는 절차와 주민등록, 세대 정보를 바탕으로 움직입니다.

또 하나는 위기가 겹친다는 점입니다. 1918년의 서민들은 4년 묵은 식량난 위에 공습과 피난, 독감을 한꺼번에 맞았습니다. 독감이 돌기 시작한 해에도 사람들은 배급 통장을 들고 줄을 섰고, 경보가 울리면 지하철역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비축과 위생, 대피는 따로가 아니라 한 묶음의 준비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휴전한 날 끝나지 않았습니다. 봉쇄는 8개월을 더 갔고 피난민의 귀향은 이듬해까지 걸렸습니다. 며칠을 버티는 준비와 함께 몇 달을 돌려 쓰는 살림을 생각해 두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개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1. 배급제가 시행되면 지자체가 공지하는 절차를 따라야 물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 주민등록 주소가 실제 사는 곳과 같은지, 세대원 명단이 맞는지 등본을 한 번 확인해 두고, 주민센터와 관리사무소 안내를 받을 라디오와 문자 수단을 챙겨 둡니다.
  2. 비상시에 필요 이상으로 사들이지 않도록, 평소 가족이 실제로 쓸 양을 나누어 사 두고 유통기한이 짧은 것부터 먹고 새것을 뒤에 채우는 선입선출로 돌려 씁니다.
  3. 배급이나 급수 줄에는 가족 전원이 같은 시간에 서지 않고 한 사람이 다녀오며, 받은 뒤에는 그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4. 밤에 경계경보가 울리면 커튼을 치고 실내조명을 최소한으로 줄여 집 안 불빛이 밖으로 새지 않게 합니다.
  5. 집, 직장이나 학교, 통근길 세 곳에서 가장 가까운 대피소까지 한 번 걸어 보고, 계단이 몇 층인지, 밤이나 휴일에 문이 잠기는지, 사람이 걸어 들어갈 입구가 어디인지 적어 둡니다.
  6. 감염병이 함께 돌 때는 음식을 만지거나 조리하기 직전, 그리고 임시 화장실의 배설물 봉투를 처리한 직후에 손 소독제가 아니라 비누와 물로 손을 씻습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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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mperial War Museums, "The Air Raids That Shook Britain In The First World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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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mperial War Museums collections, "Rationing Documents, First World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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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ndon Museum, "The First World War air raids on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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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llcome Collection, "National ration book (B) / Ministry of Food" (1918)
  • Archives départementales de la Mayenne, fonds « Réfugiés de la première guerre mondiale » (10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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