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 2003~2011, 공습과 치안 공백 속 바그다드 서민들은 무엇으로 버텼나
2003년 3월 개전부터 2011년 12월 미군 철수까지 이라크전쟁을 여섯 단계로 나눠, 배급과 물통으로 개전을 맞은 바그다드 서민들이 정전과 약탈, 종파 갈등 속에서 무엇이 바뀌었고 어떻게 버텼는지 봅니다. 민간인 사망과 실향 규모는 Iraq Body Count, 유엔(UNAMI·UNHCR), 국제이주기구(IOM), 표본조사 연구를 기관·방법별로 나란히 적었습니다.

- 1개전 전 대비2002~2003.3.19배급을 몇 달 치 미리 받고 물통과 연료를 사 두며 우물을 팠습니다.
- 2개전과 바그다드 함락2003.3.20~4.93주 공습 동안 전기와 수돗물이 약해졌고 4월 9일 수도가 함락됐습니다.
- 3점령 초기 공백2003.4~2005정부가 사라진 자리에서 약탈이 번졌고 배급과 전기는 더디게 돌아왔습니다.
- 4종파 갈등과 대규모 실향2006.2~2007사마라 사원 폭파 뒤 위협을 피해 수백만 명이 집을 떠났습니다.
- 5증파와 안정화2007~2008폭력은 줄었지만 전기와 물은 돈을 내고 사서 써야 했습니다.
- 6철수2009~2011.12.18미군이 도시와 나라를 떠났고, 실향민 상당수는 정착지와 셋방에 남았습니다.
2003년 3월 20일 새벽 바그다드에 첫 공습이 시작됐고, 4월 9일 도시는 미군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정규전은 3주 만에 끝났지만 바그다드 서민들의 고생은 그때부터 길어졌습니다. 정전과 단수, 약탈이 이어졌고, 2006년부터 번진 종파 간 폭력으로 400만 명이 넘는 이라크인이 집을 떠났습니다. 미군은 2011년 12월에야 모두 철수했습니다.
이 글은 전쟁의 시비를 따지지 않고,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보통 사람들이 무엇을 준비했고 무엇이 바뀌었으며 어떻게 버텼는지를 여섯 단계로 따라갑니다. 민간인 사망자 수는 세는 방법에 따라 크게 달라서, 기관과 방법을 함께 적었습니다.
① 개전 전 대비 · 2002~2003년 3월
이라크 사람들은 1990년 쿠웨이트 침공 뒤 이어진 유엔 경제 제재 아래에서 10년 넘게 배급으로 살았습니다. 유엔 석유-식량 프로그램에 따라 이라크에 사는 모든 사람이 매달 밀가루와 쌀, 설탕, 콩, 식용유 같은 기본 식품을 받았고, 유엔은 인구의 60%가 이 배급에 전적으로 기대어 산다고 봤습니다.
전쟁 기운이 짙어지자 정부는 배급을 앞당겨 나눠 줬습니다. 유엔 이라크 프로그램 사무소는 정부가 매달 배급을 최대 석 달 치까지 미리 나눠 줬다고 적었고, 미국 CBS 방송은 개전 전에 두 달 치가 지급됐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식용유와 콩은 정량에 못 미쳤습니다. 개전 직전 유엔은 직원 안전을 더는 보장할 수 없다며 남아 있던 국제 직원을 모두 이라크에서 철수시켰습니다.
- 그때 서민들은 바그다드의 한 주민은 사람들이 긴 전쟁에 대비해 물을 담을 플라스틱 통과 대추야자, 연료를 사 두고 집 뒤에 우물을 팠다고 회고했습니다. 연합군의 인도 지원 담당 장성도 2003년 3월 말 바그다드 주민들이 우물을 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바뀐 것 몇 달 치 식량이 한꺼번에 집으로 들어왔고, 그 뒤 배급은 개전과 함께 멈췄습니다. 다음 배급이 언제 올지 모르는 채로 집에 있는 것만으로 버텨야 했습니다.
- 버틴 방법 받은 배급을 집에 쌓아 두고 물통을 채우는 집 단위 비축이었습니다. 다만 새로 판 우물물은 장티푸스와 콜레라를 옮길 수 있어 그대로 마시기에는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물을 모아 두는 일과 그 물을 마실 수 있게 만드는 일은 서로 다른 준비였습니다.
② 개전과 바그다드 함락 · 2003년 3월 20일~4월 9일
공습은 3월 20일 새벽에 시작됐습니다. 지상군은 남쪽 쿠웨이트에서 올라와 4월 4일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장악했고, 4월 9일 바그다드의 저항이 무너졌습니다. 같은 날 영국군은 남부 도시 바스라를 장악했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공습 기간 내내 바그다드에 남아 날마다 병원과 정수장을 돌았습니다. ICRC 기록을 보면 도시 식수의 큰 몫을 대던 알카르흐 정수장을 비롯한 여러 정수장이 끊기는 전기 탓에 최소 가동에 그쳤고, 기술자들이 출근하지 못하는 곳도 많았습니다. 4월 3일 밤에는 바그다드 대부분의 전기가 나갔습니다. 개전 뒤 처음 겪는 대규모 정전이었습니다.
- 그때 서민들은 함락을 앞둔 4월 초, 집에 있던 가족들이 짐을 싸서 도시 안에서 더 안전해 보이는 친척 집으로 옮기느라 거리가 붐볐다고 ICRC는 적었습니다. 전화선이 끊겨 다른 동네와 지방 소식은 소문으로만 들어왔습니다.
- 바뀐 것 전기와 수돗물이 함께 약해졌습니다. 정수장은 비상 발전기로 하루 몇 시간씩 겨우 돌았고, 수도관이 닿지 않는 동네에는 ICRC 급수차가 날마다 물탱크를 채워 물을 댔습니다.
- 버틴 방법 미리 받은 배급과 물통으로 집 안에서 버티며 바깥출입을 줄였습니다. 나라 밖으로 떠나기보다 도시 안 친척 집으로 옮기는 쪽을 택한 사람이 많았고, 2003년에는 우려했던 대규모 난민 행렬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③ 점령 초기 공백 · 2003년 4월~2005년
정부가 무너진 날부터 바그다드에는 치안을 맡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ICRC는 4월 11일 무장한 무리가 병원 같은 필수 시설까지 약탈하고 있다며 깊은 우려를 밝혔고, 중심가 알킨디 병원은 침대와 전기 설비, 의료 장비까지 털렸습니다. 유엔 인도주의 뉴스 IRIN은 바그다드의 의사들이 스스로 무장하고 병원에서 먹고 자며 병원을 지켰다고 전했습니다.
배급은 6월 1일에야 다시 시작됐습니다. 세계식량계획(WFP)이 들여온 밀가루와 쌀, 설탕, 콩, 식용유를 이라크 무역부가 전국 약 4만 4천 곳의 동네 배급소를 통해 나눴습니다. 전기는 더디게 돌아왔습니다.
점령 열 달이 지난 2004년 2월에도 전력은 전쟁 전 수준으로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2004년부터는 무장 공격과 폭탄 테러가 늘어 길거리 자체가 위험한 곳이 됐습니다.
- 그때 서민들은 약탈이 이어지는 동안 많은 가족이 집 밖으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수돗물 압력이 약해 병원조차 물을 따로 받아 써야 했고, 가정에서는 받아 둔 물과 우물물을 함께 썼습니다.
- 바뀐 것 정부가 맡던 일이 한꺼번에 비었습니다. 병원과 정수장, 관공서가 함께 멈췄습니다.
- 버틴 방법 지킬 사람이 없는 시설은 그곳 사람들이 직접 지켰습니다. 배급이 재개되자 사람들은 예전처럼 동네 배급소에서 몫을 받았고, 배급이 다시 생활의 바닥을 받쳐 줬습니다.
④ 종파 갈등과 대규모 실향 · 2006년 2월~2007년
2006년 2월 22일 사마라의 시아파 성지 알아스카리 사원이 폭파됐습니다. 이 뒤로 종파 간 보복이 번지면서 사람들이 집을 떠나는 이유가 바뀌었습니다. 국제이주기구(IOM)는 그 전까지는 군사 작전과 일반적인 불안이 실향의 주된 원인이었다면, 이때부터는 종파 폭력이 가장 큰 원인이 됐다고 정리했습니다.
유엔 이라크지원단(UNAMI)은 보건부와 바그다드 법의학연구소 집계를 바탕으로 2006년 한 해 민간인 34,452명이 숨졌다고 발표했습니다. 사마라 폭파 뒤 국내에서 집을 떠난 사람은 약 160만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008년 초 국내 실향민 220만 명과 국외 난민 최대 200만 명을 합쳐 400만 명 넘게 집을 잃었다고 봤고, 국외로 간 사람은 주로 시리아(100만~140만 명)와 요르단(50만~75만 명)으로 향했습니다.
IOM 조사에서 사마라 이후 실향민의 약 3분의 2는 바그다드 출신이었습니다. 떠난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목숨을 겨냥한 직접적인 협박이었습니다.
- 그때 서민들은 여러 종파가 섞여 살던 동네를 떠나 같은 종파가 모여 사는 동네로 옮겼습니다. ICRC 보고서에는 무장한 사람들에게서 가족을 데리고 당장 집을 떠나라는 말을 들은 바그다드 주민의 증언이 실려 있습니다. 바그다드에서는 무차별 폭력과 몸값 납치가 두려워 출근도 장보기도, 아이 등교도 못 하는 집이 많았습니다.
- 바뀐 것 IOM이 만난 실향민은 셋집에서 지내는 사람이 가장 많았고, 친척과 지인 집, 집단 거주지나 공공건물에 머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배급을 옮겨 받는 등록이 늦어져 배급을 제때 받지 못하는 실향민도 많았습니다. 국경을 넘은 사람들도 대부분 난민촌이 아니라 이웃 나라 도시의 셋방에서 지냈습니다.
- 버틴 방법 갈 곳은 대개 친척과 친구가 있는 곳, 같은 종파가 사는 곳으로 정했습니다. 모아 둔 돈으로 셋방을 얻었고, 실향민으로 등록해야 배급과 기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옮긴 곳에서 등록부터 했습니다. 떠날 때 챙긴 신분 서류가 옮긴 곳에서 다시 배급을 받는 길을 열었습니다.
⑤ 증파와 안정화 · 2007~2008년
2007년 1월 미국은 병력을 한시적으로 늘리는 이른바 '증파'를 발표했습니다. 폭력은 그해 가을부터 크게 줄었고, IBC 기록에서도 그해 말 민간인 사망은 연초보다 눈에 띄게 낮아졌습니다.
생활 기반은 그만큼 빨리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ICRC는 2008년 3월 보고서에서 한여름 무더위 속에도 바그다드 일부 지역에는 전기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잦다고 적었습니다. 2007년 8월 북부 키르쿠크에서 시작된 콜레라는 9월 바그다드까지 번졌고, 세계보건기구(WHO)는 물을 소독할 염소가 크게 모자란다고 알렸습니다.
검문소와 통행금지 때문에 밤에 아이를 낳는 여성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고 ICRC는 기록했습니다.
2008년 중반부터 귀환이 시작됐습니다. UNHCR은 그해 하반기 들어 국내 실향민의 귀환이 크게 늘었다고 집계했습니다. 그래도 IOM 조사에서 떠나온 집에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실향민은 많지 않았고, 자기 집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고 답한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 그때 서민들은 전기를 나라에 기대지 않고 사서 썼습니다. ICRC 보고서에 실린 바그다드 주민은 월급의 상당 부분을 동네 민간 발전기에 내고서야 하루 몇 시간 전기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마실 물도 돈을 주고 사야 해서 물값이 살림에 큰 짐이 됐습니다.
- 바뀐 것 폭력은 줄었지만 생활비는 올랐습니다. 연료를 사려고 하루 종일 줄을 서야 하는 날이 있었고,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몰라 줄을 서는 일 자체가 두려웠다는 증언도 ICRC 보고서에 실렸습니다.
- 버틴 방법 동네 민간 발전기, 사서 마시는 물, 강물과 우물물을 끌어올리는 펌프로 끊긴 공공 서비스를 메웠습니다. 다만 ICRC는 소독하지 않은 강물과 우물물을 그대로 쓰는 집이 많아 오염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습니다.
⑥ 철수 · 2009~2011년
2008년 11월 이라크 의회는 미군 철수 일정을 담은 협정을 승인했습니다. 미군은 2009년 6월 말 도시에서 물러났고, 2010년 8월 18일 마지막 전투 여단이 떠났습니다. 2011년 12월 15일 바그다드에서 임무 종료 행사가 열렸고, 사흘 뒤인 12월 18일 마지막 부대가 이라크를 떠났습니다.
철수 무렵에도 폭력은 낮은 수준으로 이어졌습니다. UNHCR은 2011년에도 국내 실향민 상당수가 전국 곳곳의 비공식 정착지에서 어렵게 지낸다고 보고했습니다.
전쟁 기간 전체의 민간인 희생은 하나의 숫자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언론과 병원, 영안실 보고를 한 건씩 모은 Iraq Body Count(IBC)는 2003~2011년 민간인 폭력 사망을 약 12만 명으로 기록했습니다.
가구를 무작위로 뽑아 사망을 묻고 전국으로 넓혀 잡는 표본조사는 범위가 넓습니다. 이라크 보건부와 세계보건기구(WHO)가 함께 벌인 이라크 가족보건조사(『뉴잉글랜드 의학저널』, 2008)는 2003년 3월~2006년 6월 폭력 사망을 약 15만 1천 명(10만 4천~22만 3천 명)으로 계산했습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블룸버그 보건대학원 연구진의 조사(『랜싯』, 2006)는 2006년 7월까지 폭력 사망을 약 60만 1천 명(42만 6천~79만 4천 명)으로 냈습니다. 미국 워싱턴대 등이 참여한 대학 공동 이라크 사망 연구(『PLOS Medicine』, 2013)는 2003년 3월~2011년 6월 전쟁으로 늘어난 사망을 약 40만 5천 명(4만 8천~75만 1천 명)으로 보고, 나라를 떠난 가구의 사망까지 더하면 50만 명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기록 집계는 보고된 죽음만 세고, 표본조사는 조사 가구 수와 계산 방식에 따라 범위가 달라집니다.
- 그때 서민들은 일부 실향민은 옛 동네로 돌아갔지만, 집이 부서졌거나 남이 살고 있어 정착지와 셋방에 남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 바뀐 것 외국군이 떠나고 치안은 이라크 군과 경찰이 맡게 됐습니다. 폭탄 공격은 줄었지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 버틴 방법 돌아간 사람들은 부서진 집을 고치며 다시 시작했습니다. UNHCR은 2008년부터 돌아온 가구의 긴급 주거 수리를 지원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은 것
이라크 서민의 기록에서 눈여겨볼 점은 수도가 함락된 날과 생활이 돌아온 날 사이의 긴 간격입니다. 바그다드는 3주 만에 함락됐지만 전기와 물, 배급, 치안은 몇 달에서 몇 년에 걸쳐 돌아왔습니다. 2013년 대학 공동 이라크 사망 연구는 전쟁으로 늘어난 사망의 약 3분의 1이 의료와 위생, 교통, 통신 같은 체계가 무너진 데서 비롯했다고 봤습니다.
그 간격을 메운 것은 집에 받아 둔 물과 식량, 돈을 내고라도 구한 전기, 그리고 떠날 때 챙긴 서류였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다르지만, 물을 모아 두고 그 물을 안전하게 만드는 법을 알고, 정전에 대비하고, 현금과 서류를 챙기는 일은 오늘 할 수 있습니다.
개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 마실 물은 한 사람 하루 2~3리터를 최소로 잡고, 가정 비축은 정부 기준인 30일분을 목표로 조금씩 늘려 갑니다. 단수가 예고되면 물탱크와 욕조, 양동이에 물을 받아 둡니다.
- 우물물이나 받아 둔 물은 끓이거나, 끓일 수 없으면 무향 염소계 표백제로 소독합니다(맑은 물 2리터에 4방울, 탁하거나 차가운 물은 8방울). 연료나 화학물질이 섞인 물은 끓이거나 소독해도 안전해지지 않으니 다른 물을 씁니다.
- 정전에 대비해 건전지 라디오와 여분 건전지, 손전등, 보조배터리를 두고, 우리 단지 비상발전기가 무엇에 연결돼 얼마나 오래 돌아가는지 한 번 알아 둡니다.
- 카드와 모바일 결제가 끊기는 상황에 대비해 최소 1주일분의 현금을 여러 권종으로 나눠 둡니다.
- 신분증과 통장, 보험증서 같은 중요 서류와 그 사본, 가족 비상연락카드를 방수 팩에 넣어 생존배낭에 둡니다. 옮긴 곳에서 지원을 받을 때 신분을 증명하는 근거가 됩니다.
- 가족과 방향이 서로 다른 집결지를 정하고, 각 집결지에서 얼마나 기다릴지 미리 약속해 둡니다.
출처
- Encyclopaedia Britannica, 「Iraq War」 (https://www.britannica.com/event/Iraq-War), 「Iraq War summary」 (https://www.britannica.com/summary/Iraq-War), Britannica Students 「Iraq War」
-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ICRC activities in Iraq」 Update No.6/2003, 2003-04-09 (https://www.icrc.org/sites/default/files/external/doc/en/assets/files/other/iraq-update-rex-09-04-2003.pdf)
-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Civilians without protection: The ever-worsening humanitarian crisis in Iraq』, 2007-04 (https://www.icrc.org/sites/default/files/external/doc/en/assets/files/other/iraq-report-icrc.pdf)
-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Iraq: No let-up in the humanitarian crisis』, 2008-03 (https://www.icrc.org/sites/default/files/external/doc/en/assets/files/other/icrc-iraq-report-0308-eng.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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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주의 매거진 팀, 『대한민국 생존주의 바이블: 전쟁편』·『기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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