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편] 도쿄 사람들은 왜 큰 지진에도 집에 머물까
도쿄도는 피난소보다 집에서 버티는 법을 먼저 가르칩니다. 일상 비축, 비상 가방, 동네 훈련을 한국과 비교합니다.

피난소보다 집이 먼저인 도시
큰 지진이 나면 모두 학교 체육관으로 모일 것 같지만, 도쿄도의 안내는 다르게 시작합니다. 도쿄도가 2025년에 낸 한국어판 「도쿄도 방재 가이드북」은 대규모 재해 때 집에서 지낼 수 있다면 재택 피난을 검토하라고 권합니다. 피난소는 집이 무너지거나 불에 타 생활할 수 없는 사람이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설명이 포켓 가이드의 피난 흐름도에도 그대로 나옵니다.
아파트 주민에게는 더 분명하게 말합니다. 내진 기준을 충족한 공동주택은 피해가 가벼우면 재택 피난이 가능하지만, 그러려면 각 가정과 아파트 전체가 함께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 집에 머물러야 피난소가 정말 갈 곳 없는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조금 넉넉하게 사고, 오래된 것부터 먹는다
그래서 도쿄가 가장 공들여 퍼뜨리는 말이 일상 비축입니다. 평소 먹고 쓰는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조금 넉넉하게 사 두고, 오래된 것부터 먹고 쓰면서 늘 조금 많은 상태를 유지하라는 방식입니다. 따로 비상식량 상자를 마련하는 것보다 부담이 적고,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는 일도 줄어듭니다.
영문판 「도쿄 방재」(2023)는 부부와 영아, 고령자로 이루어진 네 식구를 예로 들어 약 3일에서 1주일 분량을 보여 줍니다. 물은 한 사람당 하루 3리터, 데우기만 하면 되는 즉석밥 27개, 통조림 9개 같은 식으로 품목마다 수량이 적혀 있습니다.
재해 지역에서 실제로 쓸모 있었던 물건으로는 휴대용 가스레인지, 손전등, 간이 화장실, 충전식 라디오를 꼽습니다. 약은 최소 3일분, 가능하면 1주일분을 두라고 하면서 재해 뒤에는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가족 구성에 맞는 양은 도쿄도의 비축 안내 누리집에서 계산해 보라고 안내합니다.
써 보지 않은 방재용품은 없는 것과 같다
도쿄 포켓 가이드에는 흥미로운 권유가 있습니다. 방재용품은 준비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써 봐야 비상시에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비축 식품을 요리해 먹어 보고, 그릇에 랩을 씌워 설거지 물을 아끼는 법을 연습하라고 합니다. 화장실이 고장 났다고 가정하고 골판지와 비닐봉지로 간이 화장실을 직접 만들어 보라는 대목도 있습니다.
대피용으로는 따로 비상 반출 가방을 꾸립니다. 휴대 화장실, 헤드랜턴, 접이식 헬멧, 우비, 호루라기, 수건, 500㎖ 물 한두 병, 마스크, 젤리 음료, 응급처치용품, 보조배터리, 급수 봉투, 건전지가 예시 목록입니다.
언제든 들고 나갈 수 있는 곳에 두라는 당부가 붙어 있습니다. 집 안에서는 냉장고와 선반이 넘어지지 않도록 L자 쇠붙이와 막대형 기구로 고정하고, 유리에는 비산 방지 필름을 붙이고, 넘어진 가구가 문과 대피로를 막지 않게 배치하라고 그림으로 보여 줍니다.
사흘은 움직이지 않는다, 동네가 함께 훈련한다
도쿄의 대비는 집 밖에서도 이어집니다. 가이드북은 2022년 피해 상정에서 대지진 때 도내 귀가 곤란자가 약 453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무리해서 이동하지 말고 직장이나 학교에서 3일간 머무는 일제 귀가 억제를 권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걸어서 귀가하면 길이 막혀 구조 차량이 인명 구조의 고비인 72시간 안에 현장에 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업소에는 직원이 머물 수 있도록 3일분의 물과 식량을 비축하라고 요구합니다.
동네 단위의 조직도 있습니다. 반상회와 자치회, 아파트 관리조합, 지역 자주방재조직이 “우리 마을은 우리가 지킨다”는 공조의 생각으로 묶여 방재 훈련을 열고, 주민은 여기서 초기 소화와 구출, 응급구호, 피난 요령을 익힙니다. 도쿄도 역시 해마다 지자체와 함께 종합방재훈련을 엽니다. 대비가 각자의 창고가 아니라 이웃과 나누는 습관으로 자리 잡은 셈입니다.
한국은 어디까지 와 있나
한국 행정안전부의 지진 국민행동요령도 떨어지기 쉬운 물건을 고정하고, 가족과 만날 곳을 정하고, 비상용품을 준비하라고 안내합니다. 방향은 같지만, 무엇을 얼마나 준비하라는 수량이 지진 안내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수량이 구체적으로 적힌 것은 전시를 다룬 「2026 비상시 국민행동요령」 쪽으로, 생존배낭 2~3일분과 식량·식수 30일분을 예로 듭니다.
도쿄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재택 피난이라는 개념이 안내의 중심에 있느냐입니다. 한국 아파트도 정전이 되면 엘리베이터와 급수 펌프가 멈출 수 있습니다. 그때 고층 세대가 집에서 며칠을 지낼 수 있는지가 결국 그 단지 전체의 버티는 힘이 됩니다. 도쿄의 방식은 큰 장비보다 장보기 습관과 한 번의 연습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우리 집에도 바로 옮겨 올 수 있습니다.
개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 냉장고·책장·전자레인지를 벽이나 받침대에 고정하고, 넘어져도 현관과 안방 문을 막지 않는 자리인지 확인합니다.
- 즉석밥·통조림·생수를 평소보다 조금 넉넉하게 사서 오래된 것부터 먹는 일상 비축을 이번 장보기부터 시작합니다.
- 한 달에 한 번은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비축 식품으로 저녁 한 끼를 차려 보고, 그릇에 랩을 씌워 설거지 물을 아껴 봅니다.
- 도쿄 안내처럼 골판지와 비닐봉지로 간이 화장실을 한 번 만들어 보고, 가족 수 기준으로 며칠분의 봉지와 휴대용 화장실이 필요한지 셈해 둡니다.
- 출퇴근길에 큰 지진이 나면 무리해서 걸어오지 말고 회사·학교에서 기다리기로 가족끼리 미리 약속하고, 연락 방법을 두 가지 이상 정해 둡니다.
출처
- 도쿄도, 「도쿄도 방재 가이드북」 한국어판, 2025
- 도쿄도, 「지진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포켓 가이드」 한국어판, 2025
- 도쿄도, 「도쿄 방재」 영문판, 2023
- 행정안전부 국민안전24, 지진 국민행동요령, https://www.safekorea.go.kr
- 행정안전부 비상대비정책국, 『2026 비상시 국민행동요령』 홍보책자, 2026
실제 경보·재난 상황에서는 정부·지자체의 공식 안내를 먼저 따르세요. 이 글은 대비를 돕는 참고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