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편] 대만 정부는 왜 모든 시민에게 전쟁·재난 안내서를 냈을까
대만 국방부는 2025년 「전민안전지침」을 펴내 그해 11월부터 약 983만 가구에 한 권씩 종이로 나눠 주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비축, 비상 가방, 대피 신호, 가짜 뉴스 대응까지 무엇을 준비하라고 했는지, 한국 지침과는 무엇이 같고 다른지 살펴봅니다.

983만 가구에 한 권씩 보낸 안내서
대만 국방부는 2025년 9월 16일 『위기가 닥쳤을 때: 대만 전민안전지침』을 공개했습니다. 국가안전회의와 행정원이 감독하고 내정부·교육부·위생복리부 등 열 개 기관이 함께 만든 책입니다. 두 달 뒤인 11월 19일부터는 이 책을 종이로 찍어 집집마다 나눠 주기 시작했습니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모두 1,100만 부를 찍어(영문판 10만 5천 부 포함) 약 983만 가구에 한 권씩, 2026년 1월 5일까지 전달하는 계획이었고, 우편으로 각 향·진·구 사무소까지 옮긴 뒤 마을 단위의 이장과 행정 요원이 가구마다 건네는 방식이었습니다.
누리집에 이미 공개돼 있었는데 왜 종이로 다시 돌렸을까요. 국방부와 내정부가 밝힌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나이 든 사람 가운데 파일을 내려받아 읽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고, 위기 때는 인터넷과 전기가 끊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작 필요할 때 화면이 꺼져 있으면 안내서도 함께 사라진다는 판단입니다.
책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원문 1~2쪽). 가족 구성과 연락이 끊겼을 때 만날 곳, 정전이 되면 물과 출입문, 엘리베이터가 어떻게 되는지, 이웃과 서로 도울 수 있는지를 독자가 스스로 따져 보게 합니다. 옥상 물탱크로 물을 올려 쓰는 집은 정전 뒤 곧 물이 끊길 수 있다는 점도 짚습니다. 겁을 주기보다 각자 자기 집을 떠올려 보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3일에서 일주일로 늘어난 비축 기준
대만의 시민 안내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국방부 전민방위동원서가 2023년에 낸 『전민국방응변수책』은 집에서 버틸 때를 대비해 3일분 이상의 식량과 물을 갖추라고 했습니다(2023년판 9쪽). 2025년 지침은 이 기준을 최소 일주일로 늘렸습니다(원문 4쪽, 21쪽). 함께 배포된 「일상 가정 비축 목록」도 가족 단위로 최소 7일분을 두라고 적었습니다.
물은 한 사람당 하루 3리터입니다(원문 4쪽, 비축 목록 1쪽). 식량은 라면·쌀·통조림처럼 오래 두는 음식과 기본 양념을, 방재 용품은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손전등, 건전지, 라디오, 정수 장비를 꼽았습니다. 평소 쓰는 만큼 다시 채우는 순환 비축을 가장 부담 없는 방법으로 권합니다.
들고 나가는 비상 가방은 따로 꾸립니다. 비상 가방 목록은 한 사람 기준 1~3일분을 잡고, 물은 600밀리리터 두 병을 넣으라고 합니다(원문 5쪽, 비상 가방 목록). 신분증과 건강보험증, 현금, 호루라기, 지도, 라디오, 우비, 가벼운 담요 같은 것이 들어가고, 아기와 노인, 반려동물 몫은 따로 적었습니다.
여섯 달마다 내용물을 점검하라는 안내는 2023년판(9쪽)과 2025년판(6쪽)에 똑같이 실렸고, 2025년판은 가방을 현관 가까이 두라고 덧붙였습니다.
물자가 모자랄 때를 대비한 설명도 있습니다. 정부는 배급 체계로 생필품을 공급하겠다고 밝히고, 배급소 위치를 정부 방재 앱의 오프라인 지도에서 미리 찾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원문 21쪽). 2023년판은 쌀·식용유·소금·액화석유가스 같은 품목을 신분증을 보이면 국적과 관계없이 정해진 양만큼 살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2023년판 33쪽).
사이렌 소리와 숨을 곳
대만의 공습경보는 소리 모양이 정해져 있습니다. 15초 긴 소리 한 번과 5초 짧은 소리 두 번을, 소리 사이마다 5초씩 쉬며 세 차례 되풀이해 모두 115초 울립니다. 90초 동안 이어지는 긴 소리는 해제 신호입니다. 2023년판(11쪽)과 2025년판(7쪽)이 같은 내용을 싣고 있어, 2년 사이 시민에게 가르치는 신호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됩니다.
경보가 울리면 지하실이나 공습 대피소로 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지침은 대피 장소를 고르는 기준을 짧게 정리했습니다. 지하가 지상보다, 실내가 실외보다 안전하고, 외벽과 문과 창에서 떨어져야 합니다(원문 17쪽). 가장 가까운 대피소는 평소에 경찰 서비스 앱이나 정부 방재 앱으로 찾아 두라고 하고, 건물 밖에서 미처 피하지 못했다면 땅에 엎드려 머리를 감싸고 입을 조금 벌린 채 폭발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라고 합니다.
2023년판에는 건물을 가진 쪽의 몫도 적혀 있습니다. 경보가 울리면 건물 경비원이나 주민이 지하 주차장 차로의 셔터와 차단기를 먼저 열어 길 가던 사람이 들어올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2023년판 28쪽). 2025년판은 군의 움직임을 보더라도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올리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 정보가 군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원문 18쪽).
항복 소식은 모두 가짜라고 미리 말해 두기
두 책 모두 가장 단호한 문장은 정보에 관한 것입니다. 2025년판은 대만이 침공을 받았을 때 정부가 항복했다거나 나라가 패배했다는 주장은 모두 거짓이라고 적었습니다(원문 19쪽). 2023년판은 이 문장을 정보 대목 첫머리에 두었습니다(2023년판 18쪽). 두 책은 유명 언론을 흉내 낸 기사, 조작한 사진, 얼굴을 바꾼 영상 같은 수법을 미리 알려 주고, 지어내지 않기, 쉽게 믿지 않기, 퍼뜨리지 않기, 그리고 반드시 확인하기라는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인터넷과 통신이 끊길 때의 길도 정해 두었습니다. 교육방송·경찰방송·국군 한성방송의 지역별 주파수를 표로 실었고, 라디오마저 들리지 않으면 가까운 파출소나 마을(리) 사무소로 가서 정확한 정보를 얻으라고 합니다(원문 20쪽, 29쪽). 2023년판에 따르면 공습 때 마을 사무소는 대피 지시를 전하고, 방송으로 대피를 재촉하고, 대피소 질서를 돕고, 대피 뒤 주민 확인을 맡습니다(2023년판 29쪽).
공동체에 대한 당부도 구체적입니다. 집을 잃으면 구호소에 등록해 지내되 구호소 자치 모임에 참여해 운영을 함께 맡아 보라고 권하고(원문 22쪽), 이틀 과정과 시험을 거치는 방재사 교육이나 의용 경찰·의용 소방대 같은 민방위 조직에 들어오라고 권합니다(원문 10쪽, 26쪽). 불안한 마음은 당연하다고 먼저 말한 뒤, 뉴스를 보는 시간을 줄이고 아이와 함께 비상 가방을 꾸려 보라고 권합니다(원문 23~24쪽).
한국 지침과 무엇이 같고 다른가
큰 틀은 비슷합니다. 행정안전부의 2026년 「비상시 국민행동요령」도 생존배낭을 2~3일분, 한 사람 분량씩 꾸리라고 하고, 대피한 뒤에는 가짜뉴스와 가짜영상에 현혹되지 말고 출처를 모르는 정보를 소문내지 말라고 합니다. 들고 나가는 가방과 집에 두는 비축을 나누는 생각, 라디오로 정부 방송을 들으라는 안내도 같습니다.
숫자는 오히려 한국이 넉넉한 곳이 있습니다. 한국 지침은 비상물자를 비상사태 초기 최소 3일에서 한 달을 버티기 위한 물품으로 정의하고 쌀·라면·통조림·식수 30일분과 부탄캔 15개 이상을 예시로 듭니다. 대만은 최소 일주일입니다.
경보 신호는 방식이 다릅니다. 한국은 공습경보와 핵 경보 때만 사이렌이 1분간 울리고, 경보해제는 사이렌 없이 음성방송과 문자로 옵니다. 대만은 115초 공습 신호와 90초 해제 신호를 모두 소리로 알립니다.
가장 큰 차이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전달 방식입니다. 한국 책자는 행정안전부 누리집에 전자책과 리플릿으로 올라와 있고, 대만은 같은 내용을 종이로 찍어 이장이 가구마다 건넸습니다. 다른 하나는 정보전에 대한 태도입니다.
『대한민국 생존주의 바이블』 전쟁편에서도 짚었듯, 대만은 항복 소식이 오면 거짓으로 보라고 국민에게 미리 알려 두었습니다. 기준이 같아도 집에 한 권 놓여 있는지, 어떤 거짓말이 올지 미리 들었는지에 따라 위기 첫날의 혼란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개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 한 달 치를 한 번에 사려 하지 말고, 먼저 가족 수 × 일주일분의 물과 식량을 채운 뒤 장 볼 때마다 조금씩 늘려 행정안전부 기준인 30일분으로 넓혀 갑니다.
- 마실 물은 1인 하루 3리터(대만·스웨덴 기준)로 잡고, 가족 수와 일수를 곱해 몇 병이 필요한지 적어 둡니다.
- 생존배낭은 한 사람에 하나씩 2~3일분으로 꾸려 현관 앞에 두고, 집에 두는 비축과 섞지 않습니다.
- 건전지 라디오와 여분 건전지를 마련하고, 우리 지역 KBS 제1라디오 주파수를 종이에 적어 배낭에 넣습니다.
- 가족과 방향이 서로 다른 집결지 세 곳을 정해 종이 연락카드에 적고, 안전디딤돌이나 지도 앱으로 찾은 가장 가까운 민방위 대피소까지 한 번 걸어가 봅니다.
- 위기 때 출처를 모르는 소식은 퍼뜨리지 않고 정부 방송으로 확인하며, 재난 관련 허위 정보는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1377)에 신고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둡니다.
출처
- 중화민국 국방부, 『當危機來臨時:臺灣全民安全指引』(영문판 In Case of Crisis: Taiwan’s National Public Safety Guide), 2025년 9월 초판·11월 19일 2판, https://prepare.mnd.gov.tw
- 중화민국 국방부 전민방위동원서, 「日常居家儲備清單」·「緊急避難包清單」, 2025, https://prepare.mnd.gov.tw
- 중화민국 국방부 전민방위동원서, 『全民國防應變手冊』(영문판 All-Out Defense Contingency Handbook), 2023, https://adma.mnd.gov.tw
- 행정안전부 비상대비정책국, 「2026 비상시 국민행동요령」 홍보책자, 2026
- Taiwan FactCheck Center, 「「臺灣全民安全指引」手冊與戰時領物資無關」, 2025년 11월 26일, https://tfc-taiwan.org.tw/fact-check-reports/taiwan-safety-guide-not-a-war-time-ration-pass/
- 風傳媒(Storm Media), 「新版「全民國防手冊」全國普發開跑 內政部解惑紙本必要性」, 2025년 11월 20일, https://www.storm.mg/article/11082450
실제 경보·재난 상황에서는 정부·지자체의 공식 안내를 먼저 따르세요. 이 글은 대비를 돕는 참고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