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편] 스위스는 어떻게 국민보다 대피소 자리가 많을까
스위스는 국민 전원이 들어갈 대피소를, 핀란드는 수만 곳의 대피소를 갖췄습니다. 그 바탕과 한국의 현실을 비교합니다.

집 지하에 대피소가 있는 나라
스위스 사람에게 대피소는 먼 곳의 공공시설이 아니라 자기 집 지하입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2025년에 낸 「민방위 사태 대응역량 강화방안 연구」는 스위스가 2023년 기준으로 전 국민의 107%를 수용할 수 있는 대피시설을 확보했다고 정리합니다.
공공 대피시설과 개인 대피시설을 합친 자리 가운데 87.2%가 개인 주택에 있습니다. 국민 수보다 자리가 많고, 그 자리 대부분이 각자의 집 아래에 있다는 뜻입니다.
출발점은 법이었습니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스는 1963년 민방위 건축조치법으로 모든 신축 건물에 대피시설 설치를 의무로 정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집을 지을 때마다 대피소가 하나씩 더해졌고, 그 결과가 지금의 숫자입니다. 요즘은 관리와 비용을 생각해 25명 이상 들어가는 대피소를 권장하고, 7명 이하의 작은 시설은 줄여 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평소엔 창고, 위기엔 방호실
스위스 대피소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1bar(100kPa)의 폭압을 견디도록 설계됩니다. 핵폭발 중심에서 그 정도 압력이 미치는 거리에서 핵무기의 효과를 막는 것이 법령상 목표입니다. 특징은 공기입니다. 화학·생물·방사성 물질을 거르는 필터와 방폭 밸브, 방폭문, 비상 탈출구, 침대, 건식 변기가 기술지침에 필수 설비로 들어 있습니다.
평소에는 일반 환기로 돌다가 위협이 오면 필터 모드로 바꿔 실내 압력을 바깥보다 높게 유지합니다.
그렇다고 이 공간을 비워 두지는 않습니다. 평상시에는 차고, 창고, 문화시설로 쓰다가 비상시에만 대피소로 바꾸는 이중 용도가 원칙입니다. 점검은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10년마다 대규모 정비를 한다고 보고서는 적고 있습니다. 매일 쓰는 공간이라서 오히려 위치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이렌과 이웃, 그리고 일주일 비축
대피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위스 연방민방위청(BABS)은 2025년 안내문에서 고정식 약 5,000대와 이동식 2,200대의 사이렌으로 사람이 사는 지역 거의 전부에 경보를 전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방음창이 있는 건물 안이나 청각이 약한 사람, 언어 때문에 안내를 알아듣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닿지 않을 수 있다며 이웃끼리 알려 주라고 당부합니다.
지하에 있거나 시끄러운 곳에 있어서 소식을 못 들었을 사람을 특히 챙기라는 것입니다. 정전에 대비해 예비 건전지가 있는 라디오를 두고, 전기와 상관없이 켜지는 자동차 라디오도 기억하라고 적었습니다.
집 안 비축은 연방 경제공급청(BWL)이 맡습니다. 「현명한 조언, 비상 비축」 안내지는 약 일주일 치 저장 식품과 마실 물, 요리와 위생에 쓸 물을 집에 두라고 권합니다. 물은 한 사람당 최소 9리터, 1.5리터 여섯 병 묶음 하나로 잡으면 사흘 동안 마시고 요리하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합니다.
카드와 휴대전화 결제가 멈출 수 있으니 일주일 장보기와 기름 한 번 넣을 만큼의 현금을 작은 단위로 두라는 대목도 있습니다.
핀란드는 등급으로 관리한다
이웃한 북유럽의 핀란드도 대피소 강국으로 꼽힙니다. 앞의 보고서는 핀란드가 2023년 기준 5만여 개의 대피시설을 두고 있고, 그 가운데 45%가 개인 주택용, 35%가 공동주택용, 20%가 공공시설용이라고 정리합니다.
대피시설을 견디는 압력에 따라 S1(100kPa), S2(200kPa), 암반 시설(300kPa) 등급으로 나누고, 수도 헬싱키의 템펠리아우키오 암반 대피시설은 4,500㎡에 6,000명을 수용하도록 설계됐다고 소개합니다. 정기점검은 10년 안에 한 번 이상 하도록 내무부 규정으로 정해 두었습니다.
한국의 대피소는 어떤가
한국에도 민방위 대피시설은 많습니다. 공공데이터포털의 전국 목록(2026년 9월 갱신)에는 사용 중인 대피시설이 1만 7,231곳이고, 그중 1만 7,140곳이 지하입니다. 대부분은 아파트·대형 건물 지하주차장이나 지하철역처럼 원래 다른 목적으로 지은 공간을 지정한 공공용 시설이고, 처음부터 대피소로 지은 정부지원 시설은 246곳입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정부지원 시설은 서해5도와 접경지역(인천·경기·강원)에 몰려 있습니다.
같은 보고서는 현행 설치 기준이 외벽 두께 같은 단순 수치에 머물러 있고, 기존 대피시설 상당수가 기밀성과 환기 설비에 문제가 있으며 화생방 방호 능력은 거의 갖추지 못했다고 진단합니다. 지하주차장 같은 공공용 대피시설의 방호성능 평가는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고 스스로 한계를 적기도 했습니다.
정리하면 한국은 숨을 공간의 수는 적지 않지만, 그 공간이 무엇을 얼마나 막아 주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대피소 위치를 아는 것과 함께, 집에서 버틸 준비를 해 두는 일이 더 중요해집니다.
개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민방위 대피소로 지정돼 있는지 안전디딤돌 앱이나 지도 앱에서 확인하고, 주차장 몇 층 어느 출입구로 내려갈지 가족과 정해 둡니다.
- 지하주차장은 화생방 필터가 없다고 보고, 문틈을 막을 투명·알루미늄 테이프와 마스크를 생존배낭에 넣어 둡니다.
- 스위스 기준처럼 1.5리터 생수 여섯 병 묶음을 가족 수만큼 준비해 사흘치 식수를 먼저 확보합니다.
- 카드 결제가 멈출 때를 대비해 일주일 장보기에 쓸 만큼의 현금을 소액권으로 집에 둡니다.
- 엘리베이터에 안내문이 붙거나 경보가 울리면 지하나 소음 속에 있어 못 들었을 이웃 어르신에게 한 번 더 알려 줍니다.
출처
-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민방위 사태 대응역량 강화방안 연구」, 2025
- 스위스 연방민방위청(BABS), 「Information, Warnung und Alarmierung der Bevölkerung」, 2025-07-07, https://www.babs.admin.ch/de/alarmierung
- 스위스 연방 경제공급청(BWL), 「Kluger Rat - Notvorrat」 안내지, https://www.bwl.admin.ch
- 공공데이터포털, 민방위 대피시설 전국 목록(데이터 15021098), 2026-09-24 갱신
실제 경보·재난 상황에서는 정부·지자체의 공식 안내를 먼저 따르세요. 이 글은 대비를 돕는 참고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