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편] 싱가포르 시민 안내는 왜 사이렌부터 지혈까지 가르칠까
싱가포르는 총력방위와 SGSecure라는 두 틀로 시민에게 각자의 몫을 맡깁니다. 세 가지 사이렌과 집 안의 대피소, 레디 백, 테러 때 달아나고 피를 멈추는 순서까지 차례로 짚어 봅니다.
다섯 기둥에서 여섯 기둥으로
싱가포르 시민 안내의 바탕에는 1984년에 시작한 총력방위(Total Defence)가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일은 군대만의 몫이 아니고 모든 시민에게 저마다 할 일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군사·민간·경제·사회·심리 방위의 다섯 기둥이었습니다.
2019년 2월 15일, 여기에 여섯 번째 기둥인 디지털 방위가 더해졌습니다. 사이버 공격과 허위 정보, 가짜 뉴스처럼 국경이 없는 위협에 대비하자는 것이고, 온라인에서 안전하고, 깨어 있고, 책임 있게 행동하자는 구호가 붙었습니다.
2월 15일은 총력방위의 날입니다. 1942년 싱가포르가 일본군에 함락된 날을 기억하며,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되새기는 날로 삼고 있습니다.
이 큰 틀 아래에서 시민이 실제로 손에 쥐는 안내는 세 갈래입니다. 민방위청(SCDF)의 경보·대피소·비상 가방 안내, 내무부가 이끄는 테러 대비 운동 SGSecure, 그리고 해마다 2월에 여는 전국 훈련입니다.
SGSecure, 테러 앞에서 시민이 할 일
SGSecure는 2016년 9월 24일 당시 총리가 직접 출범을 알린 전국 운동입니다. 테러가 일어났을 때 시민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서로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것이 목적입니다. 지금의 안내 책자는 시민의 역할을 위험을 알아채는 사람, 생명을 구하는 사람, 공동체를 묶는 사람, 사실을 확인하는 사람으로 나눠 설명합니다.
무기를 든 공격을 만났을 때의 행동은 세 단어로 줄였습니다. 달아나고, 숨고, 알린다(Run, Hide, Tell)입니다. 가장 안전한 길로 조용히 빠르게 벗어나고, 맞서거나 협상하려 하지 않으며, 짐은 두고 갑니다.
달아날 수 없으면 눈에 띄지 않게 숨어 문을 잠그고 문에서 떨어져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돌립니다. 안전해지면 경찰 999에 전화하거나, 말하기 어려우면 70999로 문자를 보내 공격자와 위치를 알립니다.
숨어 있는 동안 크게 피를 흘리는 사람을 만났을 때를 위한 세 단어도 있습니다. 누르고, 묶고, 알린다(Press, Tie, Tell)입니다. 손수건이나 천으로 상처를 직접 누르고, 팔다리에서 피가 멈추지 않으면 넥타이나 허리띠, 가방 끈으로 상처보다 5센티미터 이상 위를 묶은 뒤, 구조대에 다친 곳과 묶은 시각을 알리라고 합니다.
묶어도 멈추지 않을 때 막대를 끼워 조이는 방법까지 적었습니다. SGSecure는 테러 공격에서 가장 큰 사망 원인이 과다 출혈이라는 점을 이 순서의 이유로 듭니다. 다만 저희 팀이 낸 『대한민국 생존주의 바이블』 기본편은 넥타이나 허리띠로 만든 즉석 지혈대가 압박이 모자라 오히려 출혈을 늘릴 수 있다고 보고, 전문 지혈대나 훈련이 없다면 직접 압박을 구조대가 올 때까지 이어 가라고 권합니다.
공격이 끝난 뒤의 당부는 짧습니다. 침착하게 서로를 돌보고, 짐작으로 말하거나 소문을 퍼뜨리지 말며, 확인되지 않은 영상과 사진은 올리지도 나누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과 이웃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돕자고 합니다. 테러가 노리는 것이 다친 사람만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믿음이라는 설명이 이 안내 전체를 꿰고 있습니다.
알아채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도 정부가 스스로 보여 주었습니다. 내무부가 2025년에 벌인 사회 실험에서는 수상한 가방이나 차량 옆을 지나간 2,530명 가운데 438명(약 17%)만 이상한 점을 알아챘고, 그 가운데 당국에 알리려 했거나 실제로 알린 사람은 26명이었습니다.
세 가지 사이렌과 해마다 두 번의 연습
민방위청의 공공 경보 체계(PWS)는 하늘과 땅, 바다로부터의 공격과 자연재해, 사람이 일으킨 재난을 알리는 데 쓰입니다. 신호는 세 가지입니다. 공습이나 포격이 임박하면 울리는 경보 신호는 곧장 대피소로 가라는 뜻이고, 해제 신호가 울리면 대피소를 나와도 됩니다.
세 번째인 중요 메시지 신호는 지금 바로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켜라는 뜻입니다. 민방위청은 이 세 소리를 외워 두라고 권합니다.
외우게 만드는 방법은 반복입니다. 민방위청은 해마다 2월 15일과 9월 15일 저녁 6시 20분에 전국 사이렌으로 중요 메시지 신호를 1분 동안 울립니다. SGSecure 앱을 깐 휴대전화에서도 20초 동안 같은 소리가 납니다. 소리를 들으면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총력방위 메시지가 나옵니다.
2026년에는 이 순서가 한 번 바뀌었습니다. 처음으로 2월 15일이 아닌 2월 1일 오후 3시에 사이렌을 울려 전국 훈련의 시작을 알렸고, 뒤이어 국가안보 조정장관의 총력방위 메시지가 모든 지역 라디오와 지상파 텔레비전으로 나갔습니다. 위기는 예고한 날에만 오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주려는 변화였습니다.
집 안에 있는 대피소
싱가포르 주거 대피 체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집 안의 대피소입니다. 1997년에 만든 민방위대피소법이 1998년 5월부터 시행되면서, 새로 짓는 주택과 아파트는 가정용이나 층별 대피소를 갖춰야 합니다. 전쟁 같은 비상시에 주민이 곧바로 몸을 피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이 방은 벽과 바닥, 천장을 두껍게 보강하고, 민방위청이 승인한 강철 문과 환기구 두 개를 둡니다. 평소에는 창고나 방으로 쓰더라도 문과 구조벽을 고치면 안 되고, 문과 환기구가 녹슬지 않고 잘 움직이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지하철역과 공공 아파트, 중등학교, 주민센터에도 공공 대피소가 있고, 국가 지도 서비스 OneMap에서 가까운 곳을 찾을 수 있습니다.
대피소가 없는 집을 위한 안내도 있습니다. 집 안의 가구와 살림살이로 즉석 엄폐 공간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민방위청은 이렇게만 해도 날아오는 파편과 유리 조각을 꽤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공격이 한창일 때는 공공 대피소를 찾아 밖으로 나서기보다 집 안에서 몸을 가리는 편이 낫다는 것이 민방위청의 판단입니다. 대피소 안에서는 지역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안내를 듣고, 해제 신호가 울리면 나와 일상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레디 백, 그리고 정전을 연습하는 2주
민방위청이 권하는 비상 가방의 이름은 레디 백(Ready Bag)입니다. 집을 떠나야 할 때 들고 나가는 가방이고, 가족 모두가 둔 곳을 알아야 하며 정전 때 어두워도 꺼낼 수 있는 자리에 두라고 합니다. 꼭 넣을 것은 손전등과 따로 챙긴 건전지, 가족의 상비약, 신분증과 보험 증서 사본을 넣은 방수 서류철, 호루라기, 구급함, 아기 용품처럼 특별히 돌봐야 할 사람의 물건, N95 마스크입니다.
이유도 하나씩 붙어 있습니다. 건전지는 쓸 때까지 기기에 끼우지 않아야 새거나 녹슬지 않고, 호루라기는 소리를 지르다 지치거나 연기와 먼지를 들이마시는 것을 막아 준다고 합니다. 연락처 목록과 현금, 생수와 마른 음식, 갈아입을 옷은 선택 품목입니다. 가족마다 하나씩 꾸려도 되지만 부피 큰 물건은 넣지 말고, 유통기한과 건전지는 때때로 바꾸라고 합니다.
싱가포르는 이런 준비를 실제로 시험해 보는 기간도 둡니다. 2026년 전국 훈련 「SG 레디」는 2월 1일부터 총력방위의 날인 2월 15일까지 2주 동안 이어졌고, 주제는 긴 정전과 디지털 연결 장애였습니다.
첫날 오후 3시에는 일부 기관이 급하지 않은 앱과 누리집을 한 시간 동안 멈춰 장애를 흉내 냈고, 학교와 기업, 지역 단체가 저마다 정전과 인터넷 중단 훈련을 했습니다.
이 훈련이 시민에게 남긴 당부는 두 가지입니다. 큰 위기 때는 공식 채널에서 정보를 얻되,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끊기면 FM 라디오를 듣고, FM 방송을 받을 수 있게 준비된 주민센터에서도 소식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까운 이웃부터 살피며 함께 버티라는 것입니다.
한국 지침과 나란히 보면
가방에 대한 생각은 두 나라가 가깝습니다. 한국 행정안전부 「2026 비상시 국민행동요령」의 생존배낭도 각자 들고 갈 수 있게 사람마다 하나씩 2~3일분을 기준으로 하고, 라디오와 손전등의 건전지는 빼서 따로 두라고 합니다.
싱가포르 레디 백도 가족마다 하나씩 꾸릴 수 있고, 건전지를 기기에서 빼 두라고 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지 말라는 당부도 두 나라가 같습니다.
다른 점은 연습의 빈도입니다. 한국은 공습경보와 핵 경보 때 사이렌이 1분간 울린다고 안내합니다. 싱가포르는 같은 1분짜리 신호를 해마다 정해진 날 두 번 실제로 울려, 사람들이 소리를 귀로 익히게 합니다. 대피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집 안 보호실이 있는 집과 없는 집 모두에 각자 할 일을 정해 주었습니다.
또 하나는 시민에게 맡기는 기술의 폭입니다. 싱가포르는 사이렌의 뜻과 대피소 위치뿐 아니라 테러 때 달아나는 법, 피를 멈추는 법, 소문을 다루는 법까지 시민의 몫으로 가르칩니다. 위기의 첫 몇 분을 버티는 것은 구조대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이 안내 전체에 깔려 있습니다.
개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 생존배낭은 현관문 앞처럼 바로 들고 나갈 수 있는 곳에 두고, 둔 곳과 쓰는 법을 가족 모두가 알게 합니다. 배낭은 가족 수만큼, 사람마다 2~3일분씩 따로 꾸립니다.
- 손전등과 라디오의 건전지는 기기에서 빼서 따로 보관하고, 여분을 넉넉히 넣어 둡니다.
- 호루라기를 가방이나 열쇠고리에 달아 둡니다. 잔해에 갇히거나 말소리가 닿지 않을 때 내 위치를 알리는 데 씁니다.
- 크게 피가 나는 상처는 깨끗한 수건이나 옷가지를 두껍게 대고 두 손에 체중을 실어 세게 누르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손을 떼지 않습니다. 넥타이나 허리띠로 만든 즉석 지혈대는 압박이 모자라 출혈을 늘릴 수 있습니다.
- 지도 앱이나 안전디딤돌 앱으로 집과 직장 근처 민방위 대피소를 찾고, 가족과 한 번 직접 걸어가 봅니다.
- 확인되지 않은 영상과 사진은 올리지도 전달하지도 않고, 정부 안내방송과 경보문자로 사실을 확인합니다. 재난 허위 정보를 보면 국번 없이 1377(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이나 112로 신고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싱가포르 내무부 SGSecure, 「Advice to stay safe」, 2026년 1월 22일 갱신, https://www.sgsecure.gov.sg/advice-to-stay-safe/
- 싱가포르 경찰청, 「Change of Police Emergency SMS Sender ID from 71999 to 70999」, 2024년 9월 27일, https://www.police.gov.sg/media-hub/news/2024/20240927_change_of_police_emergency_sms_sender_id_from_71999_to_70999
- 싱가포르 내무부, 「Official Launch of the SGSecure Movement」, 2016년 9월 24일, https://www.mha.gov.sg/media-room/newsroom/official-launch-of-the-sgsecure-movement/
- 싱가포르 국방부 Total Defence, 「The Six Pillars of Total Defence」, https://www.totaldefence.gov.sg/about/the-six-pillars-of-total-defence
- 싱가포르 국방부, 「Total Defence Strengthened with Addition of Digital Defence as the Sixth Pillar」, 2019년 2월 15일, https://www.mindef.gov.sg/news-and-events/latest-releases/15feb19_nr/
- 싱가포르 민방위청(SCDF), 「Public Warning System」·「About Civil Defence Shelter」·「Types of Shelter」, https://www.scdf.gov.sg/home/civil-defence-shelter/public-warning-system
- 싱가포르 법무부 법령 누리집(SSO), 「Civil Defence Shelter Act 1997」, https://sso.agc.gov.sg/Act/CDSA1997
- 싱가포르 민방위청(SCDF), 「Ready Bag for Emergency」, https://www.scdf.gov.sg/home/community-and-volunteers/fire-emergency-guides/ready-bag-for-emergency
- 싱가포르 국방부, 「Fact Sheet: Exercise SG Ready 2026」, 2026년 1월 15일, https://www.mindef.gov.sg/news-and-events/latest-releases/15jan26-fs
- 싱가포르 내무부, 「When Terror Strikes, Are We Ready?」, 2025년 9월 18일, https://www.mha.gov.sg/stories/stories-collection/when-terror-strikes-are-we-ready/
- 행정안전부 비상대비정책국, 「2026 비상시 국민행동요령」 홍보책자, 2026
- The Straits Times, 「Fewer than 1 in 5 people noticed suspicious items during MHA's social experiments」, 2025, https://www.straitstimes.com/singapore/fewer-than-1-in-5-people-noticed-suspicious-items-during-mhas-social-experiments
실제 경보·재난 상황에서는 정부·지자체의 공식 안내를 먼저 따르세요. 이 글은 대비를 돕는 참고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