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편] 노르웨이 정부는 왜 사흘 대비를 일주일로 늘렸을까
노르웨이 시민보호청(DSB)은 2024년 자기 대비 기준을 사흘에서 일주일로 늘리고, 그해 가을 새 책자를 모든 가구에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물 20리터와 전기 없는 겨울, 이웃끼리 맺는 대비 친구까지, 그 일주일을 어떻게 넘기라고 했는지 살펴봅니다.
사흘에서 일주일로
노르웨이에서 시민의 위기 대비를 이끄는 곳은 시민보호청(DSB)입니다. 민방위대(Sivilforsvaret)도 이 기관 아래에 있습니다. DSB는 2018년 가을 「당신도 노르웨이 대비의 일부입니다」라는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전기와 물, 휴대전화망이 끊겨도 최소 사흘은 스스로 버틸 수 있게 준비하자고 했습니다.
이 기준이 2024년 5월 바뀌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권장 기간이 사흘에서 일주일로 늘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해 10월 마지막 주, DSB는 새 책자 「노르웨이의 대비에 이렇게 보탭니다」를 모든 가구에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책자 첫머리에는 이 책을 잘 보관해 달라는 부탁이 적혀 있습니다.
왜 일주일일까요. 책자는 위기가 오면 시군과 응급 기관이 스스로 버티기 어려운 사람부터 도와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자기와 가족을 돌볼 수 있으면, 위기와 전쟁을 막고 다루는 공공의 힘 전체가 그만큼 단단해진다는 것입니다.
기후 변화와 전쟁, 디지털 위협으로 세상이 어수선해졌다고 짚으면서도, 첫 장은 다 갖추지 못해도 준비한 만큼 위기를 넘기기 쉬워진다는 당부로 끝납니다.
한 사람 20리터, 물을 집에 두는 법
DSB가 권하는 물의 양은 분명합니다. 한 사람당 약 20리터를 두면 수돗물이 끊겼을 때 일주일 동안의 최소 필요량을 채울 수 있다고 합니다. 주스나 탄산음료 같은 무알코올 음료도 마실 물의 일부를 대신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가게에서 생수를 사도 되지만, 책자는 수돗물을 직접 담아 두는 방법을 자세히 적었습니다. 통을 주방 세제로 씻고 표백제를 조금 탄 물로 소독한 뒤 깨끗이 헹구고, 차가운 수돗물을 끝까지 가득 채워 어둡고 서늘한 곳에 둡니다. 깨끗한 통에 담은 깨끗한 물은 몇 년을 두어도 마셔서 해롭지 않다고 합니다. DSB 누리집의 물 안내도 같은 기준을 싣고 있습니다.
둘 곳이 마땅치 않다는 고민에도 답합니다. 큰 통 몇 개보다 작은 통 여러 개가 자리 찾기 쉽고, 찬장이나 주방 조리대 아래처럼 빈 곳 어디든 쓸 수 있다고 합니다. 공용 공간이 있는 공동주택이라면 주택조합 운영진과 이야기해 지하실 같은 곳에 물을 함께 보관하는 방법도 권합니다.
온수기 속 물도 위기 때 쓸 수 있지만, 전원을 뽑은 뒤 아래쪽 배수 밸브로 빼고 마시는 물로는 쓰지 말라고 합니다.
전기로만 데우는 집의 겨울
노르웨이는 대부분의 집이 전기로 난방을 하고, 전기가 유일한 열원인 집도 많습니다. 그래서 겨울 정전에 대한 대목이 길고 구체적입니다. 따뜻한 옷과 이불이나 침낭, 양초와 성냥, 여분 건전지를 갖춘 손전등이나 헤드램프를 두라고 합니다. 벽난로가 있다면 굴뚝이 검사를 받았는지 확인하고 장작을 넉넉히 두며, 실내용으로 만든 가스·등유 난로도 대안이 된다고 합니다.
열을 지키는 요령도 있습니다. 방과 방 사이 문을 닫거나 담요를 걸고, 창 앞에도 담요나 커튼을 겁니다. 다른 난방 수단이 없다면 이웃이나 가족, 친구 집에서 지내기로 미리 약속하고, 반대로 난방 수단이 있다면 그것이 없는 사람을 초대해 보라고 권합니다. 대비를 집 안의 물건만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약속으로 넓혀 둔 것이 이 책자의 특징입니다.
먹을거리는 집 안 모든 사람이 일주일 먹을 만큼입니다. 정전이 오면 냉장·냉동 식품부터 먹고, 평소 먹는 음식을 조금 넉넉히 사 두라고 합니다. 상온에 오래 두는 음식으로는 크래커형 빵, 귀리, 콩 통조림, 에너지바, 말린 과일, 초콜릿, 꿀, 견과류를 예로 듭니다.
결제가 멈출 때를 위해서는 여러 은행의 카드와 작은 단위로 나눈 현금, 여러 은행의 계좌를 두라고 합니다.
약과 아이오딘, 그리고 화장실
위기 때는 응급 전화와 응급 진료소가 붐빌 수 있으니 기본 응급처치를 배워 두고 구급용품을 집과 차에 두라고 합니다. 매일 쓰는 약과 의료용품은 최소 7일분을 여유로 두고, 떨어지기 일주일 전까지는 새로 받아 오는 습관을 들이라고 합니다.
아이오딘(요오드) 정제도 목록에 있습니다. 대상은 아이와 40세 미만 성인, 임신부와 수유부이고, 원전 사고 때 방사성 아이오딘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데 쓰이지만 당국의 지시가 있을 때만 먹어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대한민국 생존주의 바이블』 기본편도 같은 이유로 공식 지시 없이 요오드화칼륨을 임의로 먹지 말라고 적었습니다.
물이 끊기면 위생이 가장 먼저 흔들립니다. 책자는 물티슈와 손 소독제, 일회용 장갑, 여분의 화장지와 쓰레기봉투를 두라고 하고, 변기를 쓸 수 없을 때는 변기나 양동이에 비닐봉투를 두 겹 씌워 쓰고 두 번 묶어 일반 쓰레기로 버리라고 합니다. 빗물이나 냇물은 씻는 데만 쓰되, 방사성 낙진이나 화학 물질이 퍼진 곳에서는 쓰면 안 되니 먼저 당국의 정보를 확인하라고 합니다.
사이렌 세 가지와 대비 친구
노르웨이에는 큰 도시와 마을에 약 1,250곳의 경보 사이렌이 있습니다. 신호는 세 가지입니다. 소리가 세 차례 울리고 그 사이에 1분씩 쉬면 중요한 소식이 있으니 정보를 찾으라는 뜻이고, 짧은 소리가 약 1분 동안 이어지면 공격 위험이 있으니 몸을 숨기라는 뜻입니다.
30초 동안 끊김 없이 울리면 위험이 끝났다는 신호입니다. 민방위대는 해마다 1월과 6월 둘째 수요일 정오에 첫 번째 신호로 전국 시험을 합니다.
휴대전화로 오는 긴급 경보는 4G나 5G가 잡혀야 받을 수 있습니다. 통신과 전기가 모두 끊길 때의 공식 통로는 공영방송 NRK P1입니다. 다른 언론과 정부 누리집이 멈춰도 공공 정보를 내보내는 비상 채널이라서, 건전지나 손잡이, 태양광으로 돌아가는 디지털 라디오를 두라고 합니다.
자동차 라디오로도 들을 수 있고 차에서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다는 점도 짚습니다. 종이에 적은 전화번호 목록, 와이파이 통화 설정, 가족이나 이웃 가운데 다른 통신사를 쓰는 사람을 알아 두라는 조언도 있습니다.
정보를 대하는 태도도 적혀 있습니다. 놀랍거나 무섭거나 화나게 만드는 정보일수록 한 번 더 의심하고, 누가 퍼뜨린 정보인지 확인하며, 글과 소리, 사진과 영상이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정보는 정부 기관과 편집 책임을 지는 언론에서 얻으라고 합니다.
책자가 공을 들인 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대비 친구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누가 내 도움이 필요하고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미리 알아 두고, 응급처치, 돌봄, 피난 때 잠자리, 공공 안내를 통역하고 풀어 주기, 장보기와 이동, 물건 빌려주기, 같이 밥 짓기처럼 서로 채워 줄 수 있는 일을 예로 듭니다.
집을 피해야 하는 때를 두고는 많은 경우 집에 머무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전쟁 때 대피 통보가 오면 대피소로 가되 가까이 없으면 지하실이나 건물 한가운데 방에서 창을 멀리하라고 합니다.
책자는 실제로 읽혔을까
DSB는 해마다 가구의 대비 실태를 조사합니다. 책자를 보낸 뒤인 2024년 12월 조사에서는 열 명 가운데 약 일곱 명(67%)이 책자를 전부 또는 일부 읽었다고 답했습니다. 수돗물이 끊기거나 오염될 때 쓸 마실 물을 담아 둔다는 사람은 2017년 21%에서 2024년 47%로 늘었고, 2026년 2월에 발표된 다음 조사에서는 54%가 됐습니다.
DSB도 숫자를 좋게만 읽지는 않습니다. 마실 물을 담아 두는 사람이 여전히 절반 안팎이라며 오래 걸리는 일로 보고 있습니다. 종이 책자 한 권이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해마다 같은 질문을 던지며 조금씩 숫자를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한국 지침과 나란히 보면
기간으로 견주면 노르웨이의 일주일은 한국 지침보다 짧습니다. 행정안전부 「2026 비상시 국민행동요령」은 집에 두는 식량과 식수를 30일분까지 잡으라고 예를 듭니다. 그 대신 노르웨이 책자는 물의 양과 담는 법, 전기 없는 겨울, 결제가 멈출 때처럼 그 일주일을 어떻게 넘길지를 촘촘하게 적었습니다.
경보도 결이 다릅니다. 노르웨이는 공격 위험과 위험 해제를 모두 사이렌 소리로 알리고, 정보를 찾으라는 신호를 하나 더 두어 세 가지를 씁니다. 한국은 공습경보 때 1분 사이렌을 울리지만, 해제 소식은 소리 대신 음성방송과 경보문자로 보냅니다.
공동주택에 대한 시선은 한국에도 바로 옮길 만합니다. 노르웨이 책자는 주택조합이 지하실에 물을 함께 보관하는 방법을 권했습니다. 우리 아파트로 치면 단수 때 관리사무소가 어떻게 안내하는지, 가까운 비상 급수 시설이 어디인지 미리 알아 두는 일입니다. 혼자 일주일을 버티는 계획보다, 같은 동에 사는 이웃과 일주일을 함께 넘기는 계획이 더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개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 마실 물을 1인 하루 2~3리터로 잡으면 일주일에 한 사람당 14~21리터이고, 노르웨이 권고 20리터도 이 안에 듭니다. 생수는 오래된 것부터 마시고 그만큼 새로 채웁니다.
- 단수가 되면 관리사무소나 지자체 안내가 나오기 전까지 변기 물을 내리지 않고, 비닐을 여러 겹 씌운 뚜껑 있는 양동이를 임시 화장실로 씁니다. 두꺼운 비닐과 양동이를 미리 한 묶음으로 둡니다.
- 국민안전24에서 집과 직장 근처 비상 급수 시설을 한 곳씩 찾아 적어 둡니다.
- 겨울 정전 때는 집 전체를 데우려 하지 말고 가족이 한 방에 모여, 창에 담요를 걸고 바닥에 깔개를 깝니다. 휴대용 버너나 난로를 닫힌 방에서 켜지 않습니다.
- 카드가 멈출 때를 대비해 여러 권종으로 나눈 현금을 조금 두고, 결제 수단을 하나에만 기대지 않습니다.
- 전화를 받지 않을 때 대신 안부를 확인해 줄 이웃을 한 사람 정해 두고, 관리사무소 안내 방송과 반상회 비상 연락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 둡니다.
출처
- 노르웨이 시민보호청(DSB), 「Slik bidrar du til Norges beredskap」(영문판 How you can play your part in Norway's emergency preparedness), 2024, https://www.dsb.no/sikkerhverdag/egenberedskap/
- 노르웨이 시민보호청(DSB), 「Self-preparedness」 안내, https://www.dsb.no/en/egenberedskapsuka/Self-preparedness
- 노르웨이 시민보호청(DSB), 「Vann i beredskap」, https://www.dsb.no/sikkerhverdag/egenberedskap/vann-i-beredskap
- 노르웨이 시민보호청(DSB), 「Dette betyr flyalarmen」, https://www.dsb.no/sikkerhverdag/egenberedskap/dette-betyr-flyalarmen/
- 노르웨이 민방위대(Sivilforsvaret), 「Varsling av befolkningen」, https://www.sivilforsvaret.no/dette-er-sivilforsvaret/varsling-av-befolkningen/
- 노르웨이 시민보호청(DSB), 「Brosjyren om egenberedskap ble lest og fulgt opp」, 2025년 2월 10일, https://www.dsb.no/aktuelt/brosjyren-om-egenberedskap-ble-lest-og-fulgt-opp/
- NRK, 「Sender beredskapsbrosjyre til alle nordmenn」, 2024년 10월 28일, https://www.nrk.no/buskerud/egenberedskapsuka_-dette-mener-dsb-alle-bor-gjore-1.17100918
- 행정안전부 비상대비정책국, 「2026 비상시 국민행동요령」 홍보책자, 2026
실제 경보·재난 상황에서는 정부·지자체의 공식 안내를 먼저 따르세요. 이 글은 대비를 돕는 참고 자료입니다.